무늬들 - 이병률
그리움을 밀면 한 장의 먼지 낀 내 유리창이 밀리고 그 밀린 유리창을 조금 더 밀면 닦이지 않던 물자국이 밀리고 갑자기 불어닥쳐 가슴 쓰리고 이마가 쓰라린 사랑을 밀면 무겁고 차가워 놀란 감정의 동그란 테두리가 기울어져 나무가 밀리고 길 아닌 어디쯤에서나 때아닌 눈사태가 나고 몇심 갑자를 돌고 도느라 저 중심에서 마른 몸으로 온 우글우글한 미동이여 그 아름다움에 패한 얼굴, 당신의 얼굴들 그리하여 제몸을 향해 깊숙이 꽃은 긴 칼들 밀리고 밀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이름이 아니라 그저 무늬처럼 얼룩이 덮였다 놓였다 풀어진즌 손길임을 갸륵한 시간임을 여태 내 손끝으로 밀어보지 못한 시간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