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폐가를 지나며 - 이형곤

하동댁 2021. 8. 1. 04:42

범어사 남방 길 옆 

지금은 사라진 청룡동 

옛 마을 터

금방이라도 푹석 주저앉을 것 같은 

뼈도 살도 이미 수명을 다한 

임종 직전의 폐가 한 채 

언제부터인가 들고양이 가족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스산하고 음침한 폐가지만 

예전엔 한 가족이  슬어낸 추억을 

고스란히 머금고 있는 그리운 고향집 이리라 

폐가 

아직도 누구를 기다리는가 

문이란 문은  죄다 열어두고 

등굽은 용마루엔 제멋대로 자란 

와송이 뽀족하게 내려보고 있다 

누군가 돌아와 아궁이에 군불 지펴주길 기다리는가 

 

작은 마당엔 

찬물로 막 씻은 듯한 

 메꽃 몇 송이 

입술 파랗게 올려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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