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 유영서 타고 왔던 휠체어가 담벼락에 기댄 채 누군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바람부는 창가엔 팔랑팔랑 떨어지는 나뭇잎이 노모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철석같이 밑었던 마음은 말없이 금이 가 버리고 기다리는 마음이 스크린 도어처럼 쉴 새 없이 열렸다 닫히곤 .. 감성충만 시 2020.01.16
갈수 없는 그곳 - 반칠환 그렇치요,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지상의 가장 높은 산보다 더 높다는 그곳은 도대체 얼마나 험준한 것이겠습니까 새벽이 되기전 모두 여장을 꾸립니다 탈것이 발달된 지금 혹은 자가용으로, 전세버스로, 더러는 자가 헬기로, 여유치못한 사람들 도보로 나섭니다 우는 아이 볼기 .. 감성충만 시 2020.01.15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반칠환 보도블럭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둣모습은 나를 .. 감성충만 시 2020.01.15
처음처럼 - 신윤복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저녁무렵에도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다시 새 날을 시작하고 있다 감성충만 시 2020.01.03
한 - 박재삼 감나무쯤 되라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뻗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러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사람의 안 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 감성충만 시 2020.01.03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뱅이는 굴렀는데 한낱 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_ 반칠환 시인은 충북 청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 1992년 동아일부 신춘 문예로 등단 시집으로는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 감성충만 시 2020.01.03
폐허 이후 - 도종환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 감성충만 시 2020.01.03
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이유 - 김현태 처음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겨주고 가끔씩 흔들거리는 벼이삭과 눈인사도 나누며 참새들과 허공을 가르며 달리기 시합도 했던 그 때까지만 해도 기차는 참으로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차의 얼굴에 여드름이 몽글몽글 날 즈음 기차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 감성충만 시 2019.12.31
교차로에서 잠깐 멈추다 - 양애경 우리가 사랑하면 같은 길을 가는 거라고 믿었지 한 창에 타고 나란히 같은 전경을 바라보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봐 너는 네 길을 따라 흐르고 나는 내길을 따라 흐르다 우연히 한 교차로에서 멈춰서면 서로 차창을 내리고 안녕 보고 싶었어 라고 말하는 것도 사랑인가 봐 사랑은.. 감성충만 시 2019.12.31
바위를 위한 노래 - 이외수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을 꿈꾸지 않으리 천만년 한 자리에 붙박혀 사는 바위도 날마다 무한창공을 바라보나니 기다리는 말은 사랑하는 일보다 눈물겹더라 허연 거품을 물고 실신하는 바람 절망하고 눈보라에 속절없이 매몰되는 바다 절망하고 겨울에는 사랑보다 증오가 깊어지더라 .. 감성충만 시 2019.12.31
길 위에서 - 곽재구 길 위에서 산을 만나면 산을 사랑하고 강을 만나면 강을 사랑하지 꽃이 많이 핀 아침을 만나면 꽃향기 속에서 너에게 편지를 쓰지 언덕 위에선 노란 씀바퀴꽃 하모니카를 불고 실눈썹을 한 낮달 하나 강물 속 오래된 길을 걷지 별을 만나면 별을 깊게 사랑하고 슬픔을 만나면 슬품을 깊게.. 감성충만 시 2019.12.31
나무 같은 사람 -- 이기철 나무 같은 사람 만나면 나도 나무가 되어 그의 곁에 서고 싶다 그가 푸른 이파리로 흔들리면 나도 그의 이파리에 잠시 맺는 이슬이 되고 싶다 그 둥치 땅 위에 세우고 그 잎새 하늘에 피워 놓고도 제 모습 땅 곡에 감추고 있는 뿌리 같은 사람 만나면 그의 안 보이는 마음 속에 놀 같은 방 .. 감성충만 시 2019.12.31
분홍꿈을 묻어 놓고 - 이기철 누구가 말할 것인가 떠올라 길섶의 꽃이 되지 못하는 물 속에 누운 잿빛 돌맹이의 슬픔을 누구가 말할 것인가 씨앗들의 분홍꿐을 밟고 가는 저 바람의 서걱이는 욕망을 땅에 적은 내의를 갈아입고 이제 우리는 낯익은 그리움을 찾아 길 떠나야 하리 감성충만 시 2019.12.31
사닥다리는 낮아 하늘에 닿을 수 없다 - 이기철 수없는 오전이 가고 또 남은 오후를 아직도 그려 넣으면 임금도 될 수 있고 당나귀도 될 수 있는 덜 그린 그림이면 어떤가, 우리 돌다가 멎은 팽이 촉 나간 손전등이면 어떤가 아무래도 사닥다리는 낮아 별들의 하늘에는 닿을 수 없다 감성충만 시 2019.12.31
청산행 중 - 이기철 바라보기도 눈부신 좋은 날이 마침내 오기만 하면 네 맘 내 맘 모두 출렁이는 강물이 되는 기쁜 서정시 한 편 쓰고야 말리라 그때가 되면, 끝없는 회의의 글을 읽고 번밈의 숟가락 들지 않아도 되리라 돌 별 하늘 꽃나무만 노래해도 되리라 감성충만 시 2019.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