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독 - 이문재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깊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방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감성충만 시 2020.03.05
작은꽃 - 이기철 차고 슬프게 바람에 불이우는 풀꽃들 이 세상 누구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 없어 마을 아이도 이름을 알지 못하는 하이얗고 순한 작은 꽃 바람이 분다 별이 뜬다 조약돌이 물에 씻긴다 밤이 가고 싸늘한 이마의 아침이 온다 소리쳐도 들어 줄 이 없어 안타까움으로 혼자 서 있는 언젠가 가 .. 감성충만 시 2020.03.05
아름답게 사는길 - 이기철 그 작은 향내를 맡고 배추밭까지 날아온 가난한 나비처럼 보리밭 뒤에 피어난 철 이른 패랭이 꽃처럼 여름밤 화롯불가에서 듣던 별 형제 이야기 처럼 개나리 꽃잎에도 눈부셔 마을 앞길을 쫒아가는 병아리 처럼 감성충만 시 2020.03.05
길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감성충만 시 2020.03.05
봄이 오고 있다 - 강은교 봄이 오고 있다 그댈의 첫사랑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눈동자의 맨발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이 밟은 풀잎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이 흔들리는 바람곁으로 그대의 첫사랑의 맨발의 풀잎의 바람이 밟은 아침 햇빛 곁으로 그대의 첫사랑.. 감성충만 시 2020.03.05
황새 냉이 - 양현근 재래시장 입구에 봄이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개다리 소반에 노지에서 갓 따온 황새냉이와 박구재미, 달래 등이 한데 뒤섞여도 자식 알아보듯 냉이만 골라내어 다듬고 있는 할머니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자릿세를 받으러 온 봄볕만 몇 차레 눈길을 줍니다 먼데서 완행열차를.. 감성충만 시 2020.03.05
까치집 - 반칠환 망치도 없고 설계도도 없다 접착제 하나 붙이지 않고 못하나 박지 않았다 생가지 하나 쓰지 않고 삭정이만 재활용했다 구들장도 없고 텔레비젼도 없지만 성근 지붕 새로 별이 보이는 밤이 길다 앙상한 겨울나무의 심장 속으로 주머니난로 같은 까치 식구들 드나든다 까치집 품은 나무는 .. 감성충만 시 2020.02.11
쉬 - 문인수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 감성충만 시 2020.02.11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웃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온 밤이 우체부처럼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한다 이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세상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 갈때 하루는 또 한번의 작별이.. 감성충만 시 2020.02.11
두근거려 보니 알겠다 - 반칠환 두근거려보니 알겠다 봄이 꽃나무를 열어젖힌 게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이 봄을 열어 젖혔다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삭정이 가슴에선 꽃을 꺼낼 수 없는 건 두근거림이 없기 때문이다 두근거려보니 알겠다 감성충만 시 2020.02.11
겨울 숲을 바라보며 - 오규원 겨울 숲을 바라보며 겨울 숲을 바라보며 완전히 벗어버린 이 스신한 그러나 느닷없이 죄를 얻어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겨울의 한 순간을 들판에서 만난다 누구나 함부로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 누구나 함부로 완전히 벗어버릴 수 없는 이 처참한 선택을 겨울 숲을 바라보며, .. 감성충만 시 2020.02.11
물결 - 반칠환 그랬군아 ! 가슴의 통증이 가시고 눈앞이 환해진다 어리석고 아둔한것처럼 보이던 사람들의 굽은 어깨와 허리가 매화 등걸처럼 휘영청 내걸리고 가슴마다 꽃이 핀다 내 눈의 들보와 남의 눈의 티끌마저 모두 꽃핀다 가장 아프고, 가장 못난곳에 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이 걸려 있다니, 가.. 감성충만 시 2020.02.10
물안개 - 류시화 세월이 이따근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 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하게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버린 것은 내 쥐위에 없었다 두리번 거리는 모든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 감성충만 시 2020.01.21
나에게 -- 공광규 대양은 자기를 뒤집어 해일로 물을 정화한다 대기는 자기를 찢어 태풍으로 공기를 씻는다 밀림은 자기에게 불을 당겨 다시 숲을 시작한다 나는 해일이 되어 스스로 뒤집어본 적이 없다 나는 태풍이 되어 스스로 찢어본 적이 없다 나는 산불이 되어 스스로 태워본 적도 없다 감성충만 시 2020.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