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 중에서 - 이병률 우리가 살아가는 땅은 비좁다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적다 하지만 햇빛은 좁은 곳 위에서 가루가 될 줄 안다 궂은 날이 걷히면 온종이 위에다 빨래를 펴널고 햇빛이 뒤척이는 마당에 나가 반듯하게 누워도 좋으리라 담장 밖으로 밥낮 없는 시선들이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바쁘고 개미들의 .. 감성충만 시 2019.09.07
그대 흐린날 주막같은 인연이 있는가 - 허광희 그대 흐린 날 주막같은 인연이 있는가 참 시근도 없이 살았더라 실눈 떠 손바닥으로 해 가리며 오면 오고 가면 가는 인연인줄 알았더라 분꽃씨 만한 철이 드니 그제사 알겠더라 언제 마음 자락 풀어헤쳐 귀 기울여 본적 있는가 언제 온 마음 끓이며 토닥거려 준 적 있는가 지친 날 나래 접.. 감성충만 시 2019.09.07
좋은 사람들 중에서 - 이병률 사람의 집에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일이 목메이게 아름답다 적과 내가 엉기어 층계가 되고 창문을 마주 낼 수 없듯이 기운 찬 사람을 만나는 일이란 따뜻한 숲에 갇혀 황홀하게 밤을 지새는 일 (지금은 적잖이 열망을 끼얹거나 식히면서 살 줄도 알지만 예전의 나는 사람들 안에 갇.. 감성충만 시 2019.09.07
가을 산길 - 나태주 맑은 바람 속을 맑은 하늘을 이고 가을 산길을 가노라면 가을 하느님 당신의 옷자락이 보입니다 언제나 겸허하신 당신 그렇습니다 당신은 한 알의 익은 도토리알 속에도 계셨고 한 알의 상수리 열매 속에도 계셨습니다 한 알의 개암 열매 속에도 숨어 계섰구요 언제나 무소유 뿐인 당신 .. 감성충만 시 2019.08.30
누가 그랬다 - 이석희 누가 그랬다 누가 그랬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고 꽃잎에도 상처가 있다고 가끔은 이성과 냉정사이 미숙한 감정이 터질 것 같아 가슴 조일 때도 있고 감추어둔 감성이 하찮은 갈등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며 가쁜 숨을 쉬기도 한다 특별한 조화의 완벽한 인생 화려한 미래 막연한 동경 .. 감성충만 시 2019.08.29
8월의 시 - 오세영 8월은 오르는 길을 멈추고 힌반 쯤 돌아가는 길을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가는 파도가 오는 파도를 만나듯 인생이란 가는 것이 또한 오는 것 풀섶에 산나리 초롱꽃이 한창인데 세상은 온통 초록으로 법석이는데 8월은 정상에 오르기 전 한번쯤 녹음에 지쳐 .. 감성충만 시 2019.08.18
멀리까지 보이는 날 - 나태주 숨을 더욱 멀리 내어쉰다 마을 하나 비 맞아 우거진 봉숭아꽃나무 수풀까지 쓸려 나아가고 조그만 산 하나 다가와 우뚝 선다 멀리까지 보이는 날 - 나태주 감성충만 시 2019.06.24
정임이네집 - 홍준경 두레박 우물이 있던 그 여자네 집에는 봄이면 개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지 유년의 설레는 가슴 아는지 모르는지 또아리 끈 입에 물고 물동이 이고 갈때 표주박 동동 떠서 동당동당 소리를 냈지 뒤태가 너무 이뻐서 질끈 눈을 감았지 그때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몰랐어 맥없이 밤새우며 .. 감성충만 시 2019.06.24
속옷처럼 희망이 - 이기철 눈 아래 피는 산 꽃 들꽃들 누가 어서 오라 했겠느냐 창에까지 달여온 처저녁 별빛 흙에 묻은 아욱씨 손톱처럼 돋는 걸 보면 첫딸의 걸음마처럼 설레는 날도 있다 무엇을 이루고 어디에 닿아야 잘 살았다 하랴 누군들 이 세상 와서 광물 세월 한끝에 연필로 점하나 찍고 가는 것이 제몫의 .. 감성충만 시 2019.06.12
노을 만평 - 신용목 누가 잡아만 준다면 내 숨 통째 담보 잡혀 노을 만 평쯤 사두고 싶다 다른 데는 말고 꼭 저기 페염전 옆구리에 걸치는 노을 만 평 갖고 싶다 그러고는 친구를 부르리 노을 만 평에 꽉 차서 날을 만한 철새 한 무리 사둔 친구 노을 만 평의 발치에 흔들려줄 갈대밭 한 뙈기 사둔 친구 내 숨에.. 감성충만 시 2019.06.12
피천득의 오월 중에서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신록을 바라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감성충만 시 2019.05.16
땅위의 날들 - 이기철 어깨를 치는 것이 아픔과 슬픔의교직이라 해도 멀리서 뛰어온 햇빛 하나가 언제나 내 생애 처음 만난 은총이라 생각하며 밭 밑에 밟히는 풀이름 흙 이름 부르며 간다 오늘 끝에 남은 시간이 문득 비단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오늘 뒤에 숨은 어제 오늘 앞에 서성이는 내일이 지상의 날.. 감성충만 시 2019.05.16
그꽃의 기도 - 강은교 오늘 아침 마악 피어났어요 내가 일어선 땅은 아주 조그만 땅 당신이 버리시고 버리신 땅 나에게 지평선을 주세요 나에게 산들바람을 주세요 나에게 눈 감은 별을 주세요 그름 속 같은 지평선을 그름 속 같은 산들바람을 그름 속 같은 별을 내가 피어 있을 만큼만 내가 일어서 있을 만큼.. 감성충만 시 2019.05.16
사랑 - 나태주 목말라 물을 좀 마셨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 유리컵에 맑은 물 가득 담아 잘람잘람 내 앞으로 가지고 오는 창밖의 머언 풍경에 눈길을 주며 그리움의 물결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그 물결의 흐름을 느끼고 눈물 글썽글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아 주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 감성충만 시 2019.05.16
화살나무 - 박남준 그리움이란 저렇게 제 몸의 살을 낱낱이 찍어 갈기 세운 채 달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대의 품 안 붉은 과녁을 향해 꽂혀 들고 싶은 것이다 화살나무, 온몸이 화살이 되었으나 움직일 수 없는 나무가 있다. 박남준 시인 의 (적막 ) 중에서 감성충만 시 201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