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기차가 기적을 울리는 이유 - 김현태

하동댁 2019. 12. 31. 23:21





처음에는 행복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반겨주고


가끔씩 흔들거리는 벼이삭과 눈인사도 나누며

참새들과 허공을 가르며 달리기 시합도 했던

그 때까지만 해도  기차는 참으로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차의 얼굴에 여드름이  몽글몽글 날 즈음

기차는 자신의 처지가 답답했던 것이다

나는 왜 내 길을  벗어날 수 없을까 ?


새색시 가슴처럼 도툼하게 핀 벚꽃나무 를 보면

잠시라도 가던 길을 버리고 꽃망울에

입맞추고 실고


창가에 달빛 드리운 그런 밤이 오면

펄로에서 한 걸을 뛰쳐나와


당장이라도 그대에게 달려가련만

기차는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잠시 스쳐간  이름도 모를 간이역을

기차는 사랑하게 된 것이다


느끼고 싶어도 만질 수 없고

고백하고  싶어도 이름도 모르는 간이역을,


그래서 울었던 것이다

내 마음 알아달라고

시작과  끝을 수 십번 오가는 이유도

잠시라도 그대를 볼 수 있기에,


내가 늙어 고철이  되어 한 곳엘 자리잡고

누워야 한다면

민들레 마당을 갖고 있는 바로 그 

간이역임을

알아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기차는 그렇게

기적소리를 내며 목놓아 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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