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503

하루사용 설명서 - 김홍신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 걸 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 걸 코 막히면 안다 숨쉬는 것만도 행복인 걸 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 걸 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 걸 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 걸 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걸 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 걸 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작은게 행복인 걸 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걸 이세상의 주인공은 나

감성충만 시 2021.06.27

담장을 허물다 - 공광규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 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평과 까치집 세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 위에서 듣던 마른 귀지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연이어 맷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 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과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그루가 줄지어 서있는 금강으..

감성충만 시 2021.06.13

열매는 왜 둥근가 - 공광규

능곡 매화나무 가로수 아래를 걷는데 잘 익어 뒹구는 노란 매실들 매실을 밟으려다 열매는 왜 둥근가를 생각했다 새싹이었을 때 새잎이었을 때 꽃이었을 때 비바람에 잘 견뎠다는 점수 겠다 색연필로 둥글게 채운 색깔과 향기 오래 견딘 열매에게 주는 참 잘했다는 선생님의 천지신명의 칭찬이겠다 잘익어 뒹구는 매실을 바라보다 모욕을 잘 견뎌 둥그러진 오래전 사람 하나를 한참 생각했다

감성충만 시 2021.06.13

가슴에 묻은 김치 국물 - 손택수

점심으로 라면을 먹다 모처럼 만에 입은 흰와이셔츠 가슴팍에 김치 국물이 묻었다 난처하게 그걸 잠시 들여다 보고 있노라니 평소에 소원하던 사람이 꾸벅, 인사를 하고 간다 김치 국물을 보느라 숙인 고개를 인사로 알았던 모양 살다보면 김치국물이 다 가슴을 들여다보게 하는구나 오만하게 곧추선 머리를 푹 숙이게 하는 구나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치 국물 한 두방울 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일이다

감성충만 시 2021.04.06

나도 꽃 - 이윤선

세상 물정 모르고 피는 꽃을 보아 여자는 꽃이라는 말을 알겠다 속살이 예쁜 여자가 꽃이라는 말 아픈것 알겠다 벗겨진 겉옷처럼 꽃잎이 쌓인 길 여자의 일생 같아 알겠다 꺽지 마라는 말이 아픈 것도 알겠다 잊지 말라는 말이 슬픈 것도 알겠다 하얀 나의 살이 실오라기 없이 새상 물정 모르고 비바람에 찢기어 온 세월 꽃이 바람에 녹는 날 꽃처럼 속절없이 지고 있어 나도 꽃인 것 알겠다

감성충만 시 2021.04.06

언제나 당신 자신과 연애 하듯이 살라 - 어니 J 블린스키

그대가 불행하다고 해서 남을 원망하느라 기운과 시간을 허비하지말라 어느 누구도 그대 인생의 질에 영향을 미칠수는 없다 그럴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다 모든것은 타인의 행동에 반응하는 스스로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있다 모든사람들이 현재의 자신과는 다른 좀 더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런 헛된 노력에 매달리지 말라 그대는 이미 중요한 사람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이다 그대 본연의 향기로운 모습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수 있다 그대 본연의 모습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만족이란 결단코 불가능하다 자부심이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그대만이 그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당신의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를 사랑하라 언제나 당신 자신과 ..

감성충만 시 2021.03.23

봄은 자꾸 와도 새봄 - 손택수

사랑은 지루하지 않죠 지루한 건 사랑이 아닝{요 아무리 지루한 ㅍ경이라도 사랑 속에 있을 땐 가슴이 두근거리거든요 사랑은 그러니까 습관이 되어도 좋아요 중독이 되어도 괜찮죠 파도는 지치지 않잖아요 봄은 자꾸 와도 자꾸 반복되어도 여전히 새봄이잖아요 꽃은 자꾸 펴도 자꾸 졌다 피길 버릇해도 물릴 일이 없잖아요 절망이 습관이면 곤란하죠 반성도 버릇이면 곤란하죠 사람이 절망과 반성의 기계가 된다면 그처럼 속상한 일이 어딨겠어요 사랑 속엔 결코 버릇이 될 수 없는 절망과 반성이 있거든요 그러니 사랑에만 중독이 되기로 해요 우리 자꾸 와도 샙봄인 봄처럼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기로 해요

감성충만 시 2021.03.21

차심 - 손택수

차심 이라는 말이 있지 찻잔을 닦지 않아 물이끼가 끼었나 했더니 차심으로 찻잔을 길들이는 거라 했지 가마 속에서 흙과 유약이 다툴 때 그릇에 잔금이 생겨요 뜨거운 찻물이 금 속을 파고들어가 그릇객이 점점 바뀌는 겁니다 차심 박힌 그릇의 금은 병균도 막아주고 그릇을 더 단단하게 조여준다고 불가마 속의 고통을 다스리는 차심 그게 차의 마음이라는 말처럼 들렸지 수백 년 동안 대를 이은 잔에선 갈라진 너와 나 사이에도 그런 빛깔을 우릴 수 있다면 아픈 금 속으로 찻물을 내리면서 금마저 몸의 일부인양 ....

감성충만 시 2021.03.21

자본주의 세상 - 안지우

오뉴월 볕에 누가 물을 부었나 처음에는 찬물이었을게다 시간이 지나 뜨뜻한 물이 되었겠지 사방이 꽉 막힌 콩밭에 푹푹 찌는 구슬땀이 비처럼 흥건하다 가슴 졸이며 살던 순한 꽃이 지금보다 더한 뜰에 옹삭함이 그득하다 잔 가지가 자신 만이냐고 울부짖던 어린 사자는 아직도 털이 성난 양털이다 엉킨 양털을 다듬어 볼까 하다가 지켜보기로 했다 아, 자본주의 뜰이 날이 갈수록 확확 줄어들고, 늘어난 뜰이 양털 주인 앞에 공손하다 공연히 빛을 보러 간 꽃망울엔 가슴까지 서리만 맞았다 잘 지내거라, 미안하다 내 태양엑게 괜스레 된서리로 꽃 모가지 꺾어진 아주 선한 이가 죄인이다

감성충만 시 2021.03.07

봄, 한낮 - 박규리 -

차자향 흐드러진 계단 아래 반달이랑 앉아 하염없이 마을만 내려다본다 몇 달 후면 철거될 심여호 외정 마을 오늘은 홀로 사는 누구의 칠순잔친가 이장집 스피커로 들려오는 홏탁에 술 넘어가는 소리 소리는 계곡을 따라 산으로 오르지만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들지 않아도 들리는 그리운 것들은 다 산 아래 있어서 마음은 아래로만 흐른다 도대체 누구 가슴에 스며들려고 저바람은 속절없이 산을 타고 오르느냐 마을 개 짖는 소린에 반달이는 몸을 꼬며 안달을 하는데 나는 어는 착한 사람을 떠나 흐르고 흐르다가 지비집 같은 산중턱에 홀로 맺혀 있는가 곡진한 유행가 가락에 귀 쫑긋 세운 채 반달이보다 내가 더 길게 목을 뽑아 늘인다

감성충만 시 2021.03.02

적절한 대립

우리는 양극성 즉 대립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적절한 대립은 삶의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요소다 서로의 존재를 통해서만 상대를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 존재하고 낮은 밤이 있어야 구분되며 발전은 멈춤이 있어야 가능하다 두가지 모두가 존재해야 전체가 완성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위해서는 빛과 어둠 기상과 수면 공복과 포만감이 모두 필요하다 변화와 안정 이 두가지 역사 얼핏보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인듯 해도 결국 차례대로 겪는 일이다 다시말해 이 둘은 하나인 셈이다 대립 관계로 성립되는 적절한 긴장감은 우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고 이는 변화된 상황속에서 자신을 응원하고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용기가 된다 이른바 안..

감성충만 시 2021.03.02

첫눈 오는날 만나자 - 안도현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 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

감성충만 시 2021.0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