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시인의 쓸쓸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오직 이것 뿐이네 우적 우적 혼자 밥을 먹을 때에도 식어버린 커피를 괜히 홀짝거.. 감성충만 시 2017.11.22
이서린의 11월 낙엽처럼 불면이 쌓이는 날이 많아졌다 종종 새벽녘에 비가 흩뿌리는 날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는 느낌에 유서같은 일기를 두서없이 쓰기도 한다 가끔 안주도 없이 술을 털어 넣듯 마시다 미친듯이 밤길을 휘적휘적 걷다가 한사람 안에 웃고 있는 또 한 사람을 생각하다 모든 걸 게워내듯.. 감성충만 시 2017.11.18
황지우 시인의 11월의 나무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측광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감성충만 시 2017.11.18
최갑수 시인의 11 월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앉아 오래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11월의 짧은 햇빛은 뭉툭하게 닮은 시집 모서리 그리운 것들 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밖의 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 잠시 어룸거리다 사라지고 여리고 순진한 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 머물.. 감성충만 시 2017.11.18
가포에서 보낸 며칠 - 최갑수 한동안 가포에 있는 낡은 집에 가 있었다 늙은 내외만이 한 쌍의 말간 사기 그릇처럼 바람에 씻기어 살아가고 있는 바닷가 외딴집 바다 소리와 함께 그럭 저럭 할 일 없이 보고싶은 이 없이 참을 만했던 며칠 저녁이면 바람이 창문에 걸린 유리구슬 주렴 사이로 빨강 노랑 초록의 노을 몇 .. 감성충만 시 2017.10.25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나태주 - 멀리서 빈다.. 감성충만 시 2017.10.25
저녁 노을 - 도종환 당신도 저물고 있습니까 산마루에 허리를 기대고 앉아 저녁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동안 뿜어져 나오는 해의 입김이 선홍빛 노을로 번져가는 광활한 하늘을 봅니다 당신도 물들고 있습니까 저를 물들이고 고생의 단층같은 구름의 물결을 물들이고 가을산을 물들이고 느티나무 잎.. 감성충만 시 2017.10.25
눈물 - 류근 눈 물 류 근 하늘빛이 하도 좋아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넋놓고 올려다보고 있으려니까 눈물이 하염없이 두 빰에 적셔 흐른다 사람들은 흘깃거리며 이제 와 새삼 저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 있었나보다 고개를 끄덕이지만 개뿔 ~~~~~ 안구건조증 때문에 눈이 시어서 흘리는 눈물이다 남의 .. 감성충만 시 2017.09.22
환절기 - 임영조 환절기 임영조 밖에는 지금 건조한 바람이 불고 젖은 빨래가 소문 없이 말랐다 생나무가 마르고 산이 마르고 도시의 관절이 삐걱거렸다 사람들은 늘 갈증이 심해 내뱉는 말끝마다 먼지가 났다 가슴이 마르니까 눈만 커진 채 안부를 물어도 딴전이나 부리며 저마다 귀를 빨리 닫았다 저 .. 감성충만 시 2017.09.21
[스크랩] 차 한잔 하시겠어요?/이해인/(낭송:단이) 차 한잔 하시겠어요? 이해인 차 한잔 하시겠어요? 사계절 내내 정겹고 아름다운 이 초대의 말에서 연둣빛 풀향기가 난다. 그리운 사람을 만나 설렘을 진정시키고 싶을 때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우리는 고요한 음성으로 "차 한잔 하시겠어요?"라고 한다. 낯선.. 감성충만 시 2017.09.21
[스크랩] 가을 엽서/홍해리 가을 엽서 홍해리 풀잎에 한 자 적어 벌레소리에 실어 보냅니다 난초 꽃대가 한 자나 솟았습니다 벌써 새끼들이 눈을 뜨는 소리, 향기로 들립니다 녀석들의 인사를 눈으로 듣고 밖에 나서면 그믐달이 접시처럼 떠 있습니다 누가 접시에 입을 대고 피리 부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창백한 .. 감성충만 시 2017.09.21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신현림의 시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 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 흰 셔츠처럼 펄럭이지 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서 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 .. 감성충만 시 2017.08.31
삶에 취해 - 황동규 사진출처 : 청송님 삶에 취해 황동규 삶에 취해 비틀거릴 때가 있다 아스팔트 갈라진 구두 끝을 비비다가 밖으로 고개 내어미는 풀꽃의 쥐어박고 싶을만치 노란 콩알만한 꽃송이를 보거나 구두끝에 꽃물 남기고 뭉개진 꽃의 허리가 천천히 다시 들릴 때 봄날 아파트 뜰에서 같이 살며 잊.. 감성충만 시 2017.08.28
[스크랩] 선연가(嬋娟歌)/홍해리/(낭송:단이) 선연가(嬋娟歌) 홍해리 집을 비운 사이 초록빛 탱글탱글 빛나던 청매실 절로 다 떨어지고 그 자리 매미가 오셨다, 떼로 몰려 오셨다 조용하던 매화나무 가도 가도 끝없는 한낮의 넘쳐나는 소리, 소낙비 소리로, 나무 아래 다물다물 쌓이고 있다 눈물 젖은 손수건을 말리며 한평생을 노래.. 감성충만 시 2017.08.21
호텔 캘리포니아 혹은 늙은 선풍기 호텔 캘리포니아 혹은 늙은 선풍기 이승희 사막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 머릿결이 바람에 스칠 때* 늙은 선풍기는 탈탈거리며 지루한 반복의 시간을 세고 있는 것처럼 여름은 길고 쓸쓸했다. 돌은 뜨거웠고 모래알은 알알이 흩어져서 먼지가 되거나 비가 오는 곳으로 달아났다. 유행가들.. 감성충만 시 2017.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