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겨울나기 - 도종환

하동댁 2021. 1. 24. 13:26

아침에 내린 비가 이파리 위에서 

신음소리를 내며 어는 저녁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고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하늘과 땅에서 얻은 것들 다 되돌려주고 

고갯마루에서 건넛산을 바라보는 스님의 

뒷모습 처럼  서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들이 있다 

이제는  꽃  한 송이 남지 않고 

수레바퀴 지나간 자국 아래 

부스러진 잎사귀와 끌려간 줄기의 흔적만 희미한데 

그래도 뿌리 하나로 겨울을 나는 꽃들이 있다 

비바람 뿌리고 눈서리 너무 길어 

떨어진 잎이 세상 거리에  황망히 흩어진 뒤 

뿌리까지 얼고 만 밤 

씨앗 하나 살아서 겨울을 나는 것들도 있다 

 

이 겨울 우리 몇몇만 

언 손을 마주 잡고 떨고 있는 듯해도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견디고 힜다 

모두들 어떻게든 살아 이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