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이인휘 작가님의 페이스북 글

하동댁 2021. 12. 4. 02:28

 

얼마전 내가 잘가는 박남준 시인의 카페에서  예전 시인이 사시던 집의 사진을 보면서 뭉클 했는데... 난 이런 쓰러져가는 집을 보면 마치 내마음 같아 웬지 슬퍼지고 울쩍해진다.  그런데 이   사진과 관련된 글이 이인휘 작가님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글을 읽으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이 마구마구 .... 감히 소원해본다   이글이 너무 감동적이여서 회원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감히 용기내어  올립니다.  

 

 

겨울비가  외롭게 온다. 문득 며칠 전 한 시인이 올려놓은  그의 옛집 사진이 떠올랐다 .1993년쯤 신자유주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그때 나는 궁핍했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래서 잘 팔릴수있는 소재로 글을 썼고 25일만에 오만권을  팔리자 온갖 텔레비젼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했다. 늘 노동과 사회문제에 관한 글을 쓸때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언론이 페미니즘을 빙자한 사랑과 여성문제를 조금 건드리자 흥미를 느끼며 출연을 부탁해온 것이다.  차마 그런 프로그램에 나갈수 없어 KBS 텔레비젼 작가와의 대화라는 곳에만 나갔다.  하지만 백만권은 나갈 거라고 좋아했던 출판사의 다른 큰 사업이 도산하면서  책도 목이 꺾였다. 나역시 판매 부수에 기대를 갖다가 맥이 풀렸고 5만권에 대한 인쇄도 내용중명을 발송해가며 겨우 받아내면서 깊은 상처를 얻었다.  돈을 벌기위해 쓴 글 !  죄값을 받는구나 싶었다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 그 어려움을 풀어내려고 어느날 작가행사에 나갔었다. 작가들과 어울리면서 무거운 마음을  풀고 싶었으나 말도 하기 싫어 술만 마셨다.  그렇게 술만 마시고 있는데 어떤 사내가 자꾸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고개를 돌아보니 생활한복을 입은 사내가 빙긋 웃고 있었다 .별 이상한 인간이 있구먼  관심을 치우고 술잔만 쳐다봤다. 잠시후 누군가가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을 건넸다.  나는 잘생긴 사람 좋아하는데 술한잔 같이 할까요 예쁘게 생기고 고와 보이기까지 한 그 별스러운 사내가 어느새 옆에 앉아 있었다 . 뭐야, 이 양반이 호모야  ( 성의 비하로 받아들이지 말아주시길 )  나는 그가 부담스러웠으나 술잔을 나눴다.  그렇게 몇잔 나누면서  뜻밖에도 책을 교환하자는 약속까지 하고 말았다.  며칠후 그의 책이 도착했다. 나는 그 이상한 시인이 달갑지 않아 봉투도 뜯지 않은 채 우편물을  책상위에 던져놨다.  그렇게 보름쯤 지났을때 새벽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날 아내를 출근시키고 홀로 술잔을 기울였다.  궁핍한 생활을 벗어나려고 소설을 써서 출판했다가 스스로를 기만했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며 살아갈 나날을 아득해 했던 때였다.  그렇게 혼자 슬퍼하면서 궁상을 떨다가 문득 우편물이 눈에 들어와 봉투를 뜯었다 

 

첫시를 읽고 두번째 시를 읽고 책장을 넘길때마다 눈물이  고여들었다.  결국 나는 겨울비 3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줄기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쓰러지도록 통곡을 했다.  그대앞에서 울고 싶다 숨죽이지 않으리라 소리내어 목을 놓아 통곡으로 울고싶다. 한참을 울다가 불현듯 그가 보고 싶어졌다. 마음에 화인처럼 새겨놓은 여인인듯  사무치게  그리워 무작정 전화까지 걸었다.  전주에 가면 만날수 있을까요 내가 묻자 그가 말했다.   기다리고 있었다고 나는 미친듯이 고속버스를 타고 빗속을 뚫고 전주에 내려 택시를 타고 그가 가로쳐준 어느 성당앞  건널목에서 내렸다.  비가 오는 건널목 건너편에서 그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파랗게 신호등이 켜지는 걸  보고 그를 향해 걸었다. 그도 걸어서 다가왔다. 우리는 오래도록 그리워했던 연인처럼 건물목 중간쯤에서 말없이 포옹을 했다.  그날 새벽강이라는 술집에서 필름이 끊겼다.  눈을 뜨자 토방이었다.  흙냄새가 진동하는 방에는 대나무를 양쪽 벽에 걸어 만든 옷걸이가 보였고 방구석에 작은 책장 같은 것이 있었다.  창호지를 붙인 여닫이 문을 툭 밀자 찬공기가 눈을 틔웠다. 문앞에 섬돌이 비석처럼 누워있고 그위에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

 

 새소리가 들렸다. 신발을 신고 나가자 마당 밖에서 수십 그루의 감나무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잎진 감나무에는 잘 익은 주홍빛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내 눈을 붉게 물들였다.  감나무 밑으로 새벽 안개가 너울너울 흘러다녀 무릉도원에 있는 것 같은 기분까지 느꼈다.  몽환적 상태에 빠져든 나는 흘깃,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소리에 이끌려 걸었다.  또랑또랑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걸어가자 작은 연못처럼 둥그렇게 만들어놓은 웅덩이를 만났다.  물웅덩이 속에서 버들치들이 떼를 지어 쌩쌩 유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워 쭈그려앉아 무심히 손을 물에 담궜다.  그러자 갑자기 수십마리의 버들치들이 손을 파먹을 듯이 달려들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손을 빼다가 엉덩방아까지 찧었다.  " 내식구들이야 "  그가 어느 틈에 나타나 한마디 던지고서 마당으로 돌아섰다. 나는 다시 물웅덩이 속으로 손을 넣었다. 버들치들은 다시 몰려와 손에 성기었다.  놈들은 반갑다며 내 손을 마구 간지럽히는데 내 눈엔 눈물이 다시 고여 들었다 

 

깊은 탄식이 안개에 실려  떠다녔다. 새소리 물소리  주홍빛 감 떨어진 나뭇잎들 하늘빛 구름 청량한 공기들이 나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 밥 먹어 " 그의 목소리에  허리를 펴고 일어섰으나 마음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슬픔을  가득 담은 고무신을 끌고 그에게 다가갔다.  구수한 된장 냄새가 마당 가득했다. 멸치와 배추를 툭툭 분질러넣고 끓인 배추된장국 냄세에 집주변에 있는 모든것들이 침을  흘리기에 한 숟갈을 떴다.  그러나 나는 숟갈을  입술에 댄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치며 글을 쓰고 불의한 정권에 저항하며  살았으나 나는 보잘것 없었고 몸과 마음은 지쳐 눈빛은 흐려져 있었다. 돈이 될 소설을 써서 돈을 벌면  가난에서 벗어나 좋은 글을 쓸거라고 변명하면서 탁하고 추한 눈으로 소설을 쓴것이 부베랑처럼  날아와 내 온몸을 아프게 쑤셔댔다.  그날 나는 산이 무너지도록 통곡을 했다.  그렇게 만난 시인이 바로 박남준 시인이었고 나는 마음으로 절필을 하며 구로공단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현장 사람들과 일년을 어울리며 삶이 보이는 창이라는 진본생활 문예지를 만들었고 6년동안 책임지다가 후배들에게 이어주고 다시 소설가의 길로 돌아왔다.  페북에 올라온 한장의 사진과  어제 전화를 한 박남준 선배의 목소리 때문에 긴글을 쓰며 옛생각에 젖어봤다.  돌아보니 참으로 굴곡진 삶을 많이 걸어왔다.  사람 성격은 잘 고치지 못 한다고 5년동안  매년 소설책 한 권씩 내다가 지금은 발효에 꽂혀 그 기술을 살려내기 위해 기를 쓴다  페친분들  발효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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