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마음속 푸른 이름 - 이기철

하동댁 2019. 12. 31. 22:09




아직 이르구나

내 이 지상의 햇빛, 지상의 바람

녹슬었다고

슬퍼하는 것은 아직 이르구나

내 사람들의 마음 모두 재가 되었다고  탄식하는 것은



수평으로 나는 흰 새의 날개에 내려앉는

저 모본단 같은 구름장과

우단 같은 바람 앞에 제 키를 세우는

상수리나무들

꿈꾸는  유리 강물

햇볕 한 웅큼씩 베어 문 나생이 잎새들


마음 열고 바라보면 아직도 이 세상 늙지 않아

외출할 때 돌아와 부를 노래만은

언제나 문고리에 매어둔다

이제 조그맣게 속삭여도 되리라

내일 아침에는 이 봄에 못 피었던  수제비

꽃 한 송이

길 옆에 피고

수제비 꽃 옆에 어제까지 없던 우체국이

하나

새로 지어질 것이라고

내 귓속말로 전해도 되리라


오늘 태어나는 아이가 내일 아침에는

주홍신을 신고

가장 따뜻한 말을 써서 부치러

우체국으로 갈 것이라고

'감성충만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쓸쓸한 편지 - 정호승   (0) 2019.12.31
비오는 날의 풍경들 - 인애란   (0) 2019.12.31
내탓이오 - 최영욱   (0) 2019.12.31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0) 2019.12.13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0) 2019.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