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이면 나는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여니 가을 바람이 내 볼을 스친다.
짧은 반팔의 분홍 웃옷 사이에 바람이 따라와 말을 건다. " 이제 가을이야 .... "
엘리베이터 앞까지 갔다가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흰색 긴 소매 블라우스로 갈아 입었다. 이젠 바람이 차갑다.
핸드폰 문자는 항상 돈내라는 메세지만 가득하다. 어느 한사람도 " 가을이다 너가 그립구나 우리 차 한잔 할까 "
하는 문자 한통 없다. 하루 종일 오지 않는 문자를 확인하고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할 일 없이 혹시나 하면서 확인한다.
참 쓸쓸한 가을이다.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고독과 외로움과 씨름을 해야한다 정호승님의 시한구절이 생각난다.
"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산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것 " ........
많은 난제들을 어떻게 해결 해야 할지 몰라 머리속 복잡하지만 난 미리부터 가불하여 걱정하지 않으련다. 그저 이 멋진
가을날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행복 해하고 싶다. 내일 비록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 아르바이트 하면서 모아놓은
돈이 보일러 교체 하는데 들어가야 할 것 같다. " 여행 하고 싶어요 책을 몽땅 다 사버릴까요" 하면서 미리부터 계획을 세우고
자랑하더니 오늘 60만원 주고 보일러를 새로 장만해야 한다고 보일러 수리 기사가 다녀가면서 말했다.
" 사모님 이 해태 보일러를 지금까지 쓰시는 집이 없어요 이 제품은 부속이 안나와요 수리 해 드릴 수가 없어요 "
며칠전부터 울릉도 여행이 하고 싶어서 만원 한장도 쓰지 않고 아껴두었는데 당장 온수 때문에 더는 미룰수가 없다.
내일은 보일러 기사한테 전화 해야겠다.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어느것 하나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는것은 견디는 것이라고 했던가 ? 그저 내 앞에 일어나는 일들 하나 하나 견디면서 사는거다. 내가 잘났다고
난 운명이라는 신에게 절대로 굴복 하지 않는다고 큰소리 쳐봐야 운명 의 신이 내게 입김 한번 후하고 불면 난 꼼짝없이
그 입김은 내게 쓰나미가 되어 나를 덥친다. 그 쓰나미에 휩쓸려 나는 만신창이가 된다. 그래도 삶은 살만하다고 나는
항상 억지를 부린다. 그래도 살아있는 것은 죽음 보다 백배 천배 행복한 일이라고 ..... 물론 나도 안다. 아무리 진흙속
이라고 해도 그래도 저승 보다 이승이 낫다는 사실을 ......
흰옷 브라우스를 입고 거리로 나섰다. 아직 햇살은 남아 있지만 바람은 선선하다. 안치환씨의 수선화에게 라는 노래를 이어폰으로
반복으로 들으면서 행길을 건너고 다시 또 건너고 커브 하나만 돌면 내가 일하는 식당이다.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모든 걱정 고민 다 내려놓고 오늘은 어제 처럼 거짓말 하지 않기 , 소주컵 깨지 않기를 머리속으로 다짐하면서 커브를 돈 순간
내 눈 앞에 펼처진 광경에 주춤한다. 오른쪽 손과 발이 불편한 모습의 한 노인이 휄체어를 한손으로 의지하고 다른 한손으로
두툼한 박스 상자들을 들어서 실고있다. 한 손이 말을 듣지 않으니 한손으로 해야 하는데 나이 많이 드신 노인분이라서
그조차도 쉽지 않은지 박스 하나 들어 올리지를 못하고 서성대신다. 맘이 짠했다. 손에 들고 있던 가방과 이어폰을 빼고 나는 노인에게
다가갔다 " 할아버지 제가 도와 드려도 되지요 ?" " ....................... " 할아버지는 대답 대신 휄체어에 앉으시며 한손으로 당신의
뒷자석을 가리켰다. 뒤에 올려달라는 신호이시다. 박스들을 하나 하나 차곡 차곡 앉아 계신 등뒤로 실어드렸다. 이제 남은것은
오래된 신문지 몇장 이 신문지는 실을 공간이 없을것 같아서 " 할어버지 이건 안실어도 되지요 " 하고 물으니 할아버지는 당신이
신고 있는 신발을 손으로 가르킨다. 아마 이 사이 공간에 신문을 실어달라는 신호 같았다. " 할아버지 이사이에 올려 놓을까요 "
" ............................... " 또 말이 없으시다. 나는 신문지를 할아버지 두발 사이로 차곡 차곡 쌓았다. 신문지를 다 실고나자
할아버지가 한 손 으로 내 등을 만져주신다.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할아버지 휄체어를 밀어드렸다. 돌아서서 식당 안으로
걸어가는데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나는 자주 돌아보곤 했다.
젊었을적에는 분명 누군가의 든든한 아버지 이셨을 것이다. 혈기 왕성해서 자식을 위해 당신의 진액을 다 쏟아부으셨을것이다.
아버지 라는 이름으로 ....... 지금은 비록 쓸쓸하고 나약하고 병든 노년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
그분의 등굽은 모습이 한손 불편한 니은자의 올려진 손이, 말도 제대로 못하시고 그저 신호만 하시던 어눌한 모습이
일하는 내내 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지금 조금 쓸쓸해도 외로워도 고독해도 괜찬다. 내 노년이 외롭지 않기를, 쓸쓸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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