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유월의 독서 - 박준

하동댁 2023. 6. 11. 06:26

그림자가 먼저 달려드는 

산자락 아래 집에는 

대낮에도 

불을 끄지 못하는 

여자가 살고 

 

여자의 눈 밑에 난 

작고 새카만 점에서 

나도 한 일 년은 살았다 

 

여럿이 같이 앉아 

울 수도 있을 

너른 마당이 있던 집 

 

나는 그곳에서 

유월이 오도록 

꽃잎 같은 책장만 넘겼다 

 

침략과 주름과 유목과 노을의 

페이지마다 침을 묻혔다 

 

저녁이 되면 

그 집의 불빛은 

여자의 눈 밑 점처럼 돋아나고 

새로 자란 명아주 잎들 위로 

웃비가 내리다 가기도 했다 

먼 능선 위를 나는 새들도 

저 눈 속 가득찬 물기들을 

그빛을 보며 말려갔겠다 

 

책장을 덮어도 

눈이 자꾸 부시던 

유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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