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청매화 - 박규리

하동댁 2023. 5. 29. 22:05

다른 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살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깍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짐도 그대로다 

 

그사람 떠나고 다시 꽃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는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더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레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겨울 

내복 두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이 봄날 꽃길처럼 

부디 그대의 앞길도 눈이 부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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