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스크랩]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 박남준

하동댁 2016. 2. 9. 20:40

지난 안동에서 폰 문제로 시낭송 영상도 못찍고 제대로 찍지를 못해 아쉬웠지만...

두분의 긴 세월의 애정과 우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고

오랜 세월 글과 시로 버텨 온 온전한 삶으로 두분에 대한 존경심이 자연스레 우러러나왔습니다~

 

이 가을에 읽어보는 시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를 읊조려봅니다~

잠시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마음은 어디까지 흘러갔나 들여다봅니다~

 

 

 

 

 

 

 

 

 

이 좋은 가을, '버들치 시인'으로 통하는 지리산 악양 고을 박남준 시인은

이 풍요로운 가을에 마루 끝에 나앉아 마냥 청승을 떨고 있다.

마치 풍요로운 가을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듯 사위어가는 생명들과 한가롭게 수작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 저의에는 올해도 함께 무사히 지냈다는 안도의 한숨이 깃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생도 이런 때가 되면 이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가을은 풍요와 적요가 함께하는 계절이다. 

지난 여름의 맹렬했던 기억과 함께 다가올 긴 겨울을 예감하는 마음속에도 풍요와 적요가 동거한다.

 

- 안상학시인의 '시의 꽃말을 읽다' 중에서 -

 

 

 

 

 

 

 

 

마루에 앉아 하루를 관음하네

 

                                                    박남준

 

 

뭉게구름이 세상의 기억들을 그렸다 뭉갠다

아직껏 짝을 찾지 못한 것이냐

애매미의 구애는 한낮을 넘기고도 그칠 줄 모르네

긴꼬리제비나비 노랑 상사화 꽃술을 더듬는다

휘청~ 나비도 저렇게 무게가 있구나

잠자리들 전깃줄에 나란하다

이제 저 일사불란도 불편하지 않다

붉은머리오목눈이 한 떼가 꽃 덤불 속에 몰려오고

봉숭아 꽃잎 후루루 울긋불긋 져 내린다

하루해가 뉘엿거린다

깜박깜박 별빛만이 아니다

어딘가 아주 멀리 두고 온 정신머리가 있을 것인데

그래 바람이 왔구나 처마 끝 풍경소리

이쯤 되면 나는 관음으로 고요해져야 하는데

귀 뚫어라 귀뚜라미 뜰 앞에 개울물 소리

가만있자 마음은 어디까지 흘러갔나

 

 

 

출처 : 박남준 詩人의 악양편지
글쓴이 : 청명한 가을(백미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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