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스크랩] `사려니숲길` 눈 위를 걷다

하동댁 2018. 4. 23. 09:02


오랜만에

사려니 숲길 눈 위를 걸었다.

 

전에는

오름에 가기 위해 모인 날에

눈이 펑펑 쏟아지면

시외버스를 타고 가

하염없이 눈을 맞으며 걷곤 했는데,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몇 해 걸렀다.

 

지난 일요일에 그 가까이에 있는 삼다수숲 눈길을

원 없이 걸었는데, 웬  눈복

수요일에 또 눈길을 걷게 되었다.

 

동쪽 남조로변 붉은오름 입구에서 물찻오름 입구까지는 5.5km,

물찻오름 입구에서 비자림로변 사려니 숲길 입구까지는 4.5km,

도합 10km의 눈길을 종주한 셈이다.

 

길은 크게 삼나무와 자연림 숲으로 나눌 수 있으나

삼나무 숲길이 압도적으로 많다.

 

어찌 보면 그 풍경이 그 풍경 같으면서도

갈수록

새로워 보이는 그런 길이었다.

   

 

 

사려니 숲길 - 도종환

 

어제도 사막모래 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 배 열 배나 큰 나무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 리 십 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이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 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 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수국 - 김수열

 

간밤 비바람이 심한 탓일가

사려니 길섶에 수국이 낭자하다

 

더러는 찢기고 더러는 꺾이고

아직 덜 여문 꽃망울

파리한 얼굴을 흙바닥에 묻었다

 

인기척에 놀란 노루가

때죽낭 사이로 총총총 사라진다

 

검은 까마귀 검게 울고

수국수국 수국꽃이 운다

 

나라가 걱정이다

나라가 걱정이다

   

 

 

마른 산수국 - 홍성운

 

  온 섬에 폭설이 내려 길이 모두 지워진 날은 사려니숲길을 천천히 걸어가 보라 산수국 마른 꽃잎들 결로 남아 흔들린다

 

  산에 든다는 건 마음을 비우는 일, 그러기에 야생화도 마른 꽃이 되기에는 바람에 향기를 풀고 색소까지 내줘야 한다

 

  요즘 길섶에는 겨울 나비 한창이다 오가는 사람들의 동공 가득 묻어나는 가벼운 꽃의 날갯짓, 지난여름 꿈의 잔상들!

   

 

 

제주 사려니 숲길을 걸으며 - 東山 박태강

 

아름드리나무 빽빽이 늘어선 한라산 중턱 숲길을

수많은 연인 부부 친구 가족들

발걸음 보면

삶이 건강으로 이어져 행복을 찾는 길

 

높은 산길 물소리 하나 없이

이따금 들려오는 까옥 까옥 까마귀 소리

무엇이 바쁜지

말없이

재촉하는 숲길

 

수백 년 살면서 보는 나무

고작 백년을 못살고 가는 인생

너에게서 생명을 구하려

오늘도 많은 사람

바쁜 걸음 걷노라!

 

네 가슴에 안기면

기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먼 길 와서

네 품에 안겨

삶의 오르가즘을 느끼노라.

   

 

 

사려니 숲길을 걷다 - 오영호

 

가을빛 익어가는

사려니 길섶마다

가뭄과 긴 장마에도

인내와 침묵으로

피워낸

꽃과 열매를 단

나무들은 성자다.

 

얼마쯤 걸었을까

발걸음이 느려지고

그래도 불평 없이

따라온 바람과 햇살

때때로 허방을 짚는

또 다른 나를 본다.

   

  

사려니 숲길을 걸으며 - 潤疇 목필균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가 신성하다는

사려니 숲길로 예약 없이 들어선다

 

빼곡한 숲 사이로 흐르는

기분 좋은 바람

맨발로 걸어도 좋을 적톳길

드문드문 열려있는 푸른 하늘이 보내는

눈부신 햇살

 

온몸으로 호흡하며

홀로 걸어도 좋을 느낌표들

 

사는 일이 예약된 것만으로 채워진다면

어려운 일들 풀어가며 살 일이 있을까

 

사철 푸른 조릿대 길도

발걸음마다 자갈자갈 대답하는 송이 길도

쭉쭉 벋은 삼나무 길도

사려니 숲길의 한 가닥인 것을

 

가다가 돌아서 간들 누가 뭐라 할까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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