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아오나 봄 - 나영애
그믐으로 가던 달이
역으로 가는 것 같다
만월의 환희를 누리는가 할 때
내 몸에 세 든 것들이
야금야금 세월과 함께 파먹으며
내리 그믐달로 가는 줄 알았다
지속하던 스트레스 사라진 지 몇 달
마음과 주변이 그저 잔잔했다
나를 조물거리던 분
무슨 생각 하셨는지
여성성 돌려줘 환하게 꿈틀,
은밀한 선물 같다
어쩌랴
달의 일생을 다 살아보지 못해 낯설지만
찾아온 환한 감성
가만히 안고 느껴봐야겠다
잠시 그믐달의 진입을 보류해도 되려나?
♧ 첫이 궁금하다 - 방수영
내가 시작된 첫은 어디였을까
피가 돌고 살이 만들어지는 구간은
평온했을까
제 모습 다 갖추는 동안
마음이라는 허공이 생겨나고
그 허공에 무엇도 담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까지
나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텅 비어 있다는 걸 아는 지금
나는 나인가
타인들의 일부인가.
♧ 둥지 - 김은옥
햇빛 한 조각 잎 사이에서 날아와 내 가슴에 꽂힌다
아득히 매달린 까치둥지 까맣게 익어간다
낮은 가지에서 서성대는 새끼 한 마리
무슨 생각 중일까 눈빛이 붉다
어린것들 그런 눈으로 어미를 찾던 때 있었다
한 줌 빛 반짝이는 창밖의 오후들
다 큰 아이들 떠난 집에서 나는 기다린다
새끼 새도 집으로 날아가고
아이들 밝은 눈으로 햇빛 안고 문을 열면
바알갛게 서로 볼 비빌.
♧ 환청 또는 이명 - 홍해리
-치매행 致梅行 ․ 274
병원에 온 지 엿새째
눈을 뜨고 멍하니 바라보는 아내
“나 알아, 나 알아 보겠어?”
“응!” 하는 소리 들릴락말락
환청인지 이명인지 내 귀를 울립니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아내의 목소리인가
그만도 고마워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작년 가을 귀가 차량에서 내리지 않으려
“왜, 왜, 왜 그래! 〇〇년, 지랄하고 있네!” 한 말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올해 들어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습니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시원하니
올가을 아내의 입이 활짝 열려
욕이라도 한껏 내뱉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쁜 놈, 네가 내 남편이야!”
♧ 물詩 ․ 1 - 이무원
-절정
물과 물이 몸을 섞는다
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완전한 합일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확인은 사랑의 병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
헤어지면서도 물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간절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포옹
억겁을 돌아도
추락을 모르는
절정의 꿈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생명
♧ 길 끝의 연가 - 유정자
무심히 흐르는 강물이런가
굽이쳐
흐르는 세상
외길을 밟고 일렬로 간다
가다 보면 길 끝에 선 그림자
이슬로 맺힌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저는 이제 천국으로 이사가려 합니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천국에서 만납시다’
길 끝에 서서 지인들께 혼신을 새겨놓고
그분, 푸른 이슬 담은
영롱한 그림자를 거두려 한다
강물을 유람하는 생명들
갈대 사이로 차례차례 훑는다
고요한 눈매 가득 달빛을 쏟아낸다
♧ 새와 나무 - 문선정
그녀의 진혼굿을 하던 날
까마귀 울음소리로 주변이 들썩거렸다
어떤 이는 죽어 새가 된다는데
전생에 새였던 사람이 다시 새가 되어
우리 가슴으로 들어와 살아간다는데
캄캄한 밀실 같은 무덤에 갇힌 그녀의 차디찬 슬픔을 읊조리던 무녀는 진혼굿을 하다 말고 붉은 팥이 뿌려진 시루를 가리켰다
발자국이 보이지? 어두운 곳을 벗어나 날아올랐어
무녀의 말이 옳았다
죽어 새가 되었어도 엄마는 우리 엄마
그날 밤 꿈에 한 그루 늙어가는 나무 아래로 새 한 마리 걸어왔다
삐욧- 삐욧-
파란만장 끝에 배운 저 언어를 통역할 수 없다
젖은 발로 길을 가르며 내게로 온 새
무덤과 여기의 거리는 너무 멀어서
인간의 목소리로는 그리운 얼굴을 부를 수 없어서
나무의 발등 아래 쌓인 눈물의 편지를 읽으며
나는 새처럼 우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 아모르 파티 - 나병춘
감당 못할 마그마
활화산 같은
성난 사자의 포효 같은
아득히 밀려드는
광풍의 해일 같은
아무도 어쩌지 못할
운명,
오도 가도 못할
아모르 파티*
뚜벅뚜벅 걸어가리
낙타처럼
용감무쌍하게 맞으리
무소의 뿔처럼
기쁘게 맞이하리
철부지 아이처럼
운명아
어서 오너라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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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말한 ‘운명愛’,『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 월간 '우리詩' 2018년 4월호(통권 358호)에서
* 사진 : 오늘(4.10) 18코스에서 만난 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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