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보와 리뷰

신영복 교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읽고서

하동댁 2016. 1. 16. 17:37

 

 

 

아침에 퇴근하고 적당히 위장을 채우고 책두권을 가방에 넣고 내 아지트에 도착했다. 행복하려면 나만의 아지트가 있어야 한다고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말했다.  난 가끔  달달한 카페라테 한잔을 시키고 보통 책 한권의  3/2  이상을 읽고 일어선다. 소위 죽순이 노릇을 하지만 난 이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사천원의 행복을 산다.  오늘 역시  11시반 부터  책읽기가 시작되었고 화장실 한번 가지않고 신영복 교수님의 책을 읽었다.  연필을 항상 손에 들고 책을 읽으면서 새카맣게 밑줄도 치고 소리내어 낭송도 하고  짬짬이 핸폰으로  사진도 찍고 하면서 한권을  다 읽었다.   20년동안 감옥살이 하면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글속에 삶의 지혜와  사유의 흔적들,무릎 을 치게하는 공감의 글들 ...  교수님 사랑합니다.   컴옆에 두고 두고 읽겠습니다. 영혼이 목마를때...우리시대의 최고의 지성  내가 그분의 글들을 읽을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

 

164페이지의 글을 옮겨 적어본다.

 

" 슬픔에 커진 눈으로, 궁핍에 솟은 어깨로, 때로는 욕탕의 적나라함으로, 때로는  멀쩡하게  발톱 숨긴 저의로, 한몸 인생이 무거워 짐 추수리며 몸 부대끼며 살아온 이 팔레트 위의  우연같은 혼거속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이 되어서 헤어지는지...  숱한 사연과 곡절로 점철된  내밀한 인생을 모른채, 단 하나의 상처에만 렌즈를 고정하여 줄곧 국부만을 확대하는 춘화적 발상이 어안처럼 우리를 왜곡하지만  수많은 봉별을 담담히 겪어오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묵직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견실함을 신뢰하며, 우리시대의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감을 감사하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게 합니다 "

 

" 나는 인간을 어떤기성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개인이 이룩해 놓은  객관적 '달성' 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이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 -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유년시절에서 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사회가 지향했던 가치에 대해서 반성하게 됩니다. 그런의미에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될  동양고전  강독은 사실 감옥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강의중에서 )

 

"옥뜰에 서 있는 눈사람, 연탄조각으로  가슴에 박은 글귀가 섬뜩합니다.  "나는 걷고 싶다"   있으면서도 걷지 못하는 우리들의 다리를 깨닫게 하는 그 글귀는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내일 모레가 2월 초하루 눈사람도 어디론가 가고 없고 먼데서 봄이 오는 기척이 들립니다. (388쪽 )

 

"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는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위에 받고 있을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결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자체였다 (담론 중에서)

 

"우리는 결코 떠날 수 없는 자리에서 자마다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땅에  뿌리박은 한 그루 나무일 뿐입니다.  삶이란 비록 그것이 감옥처럼 고인  세월이든 강물처럼 흐르는 세월이든  지나간 세월은 어김없이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숙이 들어와 결코 떠날수  없는 자기 자신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더불어숲 중에서 )

 

" 돕는다는 것은 비오는날 우산을 함께 쓰는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

 

" 우리는 이겼다는 외침과 나는 이겼다는 외침 사이에는 참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이차이가  우리들로 하여금 쓸쓸한감상에 젖게 하는 까닭은 아직도 내가 우리를 이겨야 하는 것이 바로 오늘의 현실이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철학이 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더불어숲 중에서 )

 

"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이상이 공유되고 있는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 승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더불어숲에서 )

 

"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 처음처럼  18쪽 )

 

"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하나의 가장 먼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처음처럼 50쪽

 

"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어느 생각 깊은 나무가 말했다. 두려우 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한 쇠는결코  우리를 해칠수 없는 법이다 ( 나무야 나무야 29쪽 )

 

" 평화는 평등과 조화이며 같혀있는 우리의 이성과 역량을 해방하여 겨레의 자존을 지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의 이유로 걸어갈 수있게 하는 자유 그 자체입니다  (나무야 나무야  156쪽 )

 

" 내가 징역살이에서 터득한 인간학이 있다면 모든 사람을 주인공의 자리에 앉히는 것입니다 나는 한사람 한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그사람이 인생사를 경청하는것을 최고의 독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몇번에 나누어서라도 가능하면 끝까지 다 듣습니다.  유심히 주목하면 하찮은 삶도  멋진 예술이 됩니다.  예술의 본령은 우리의 무심함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담론 251쪽 )

 

" 씨 과실을 먹지 않는것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해도 가슴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 (담론 420쪽 )

 

" 모로 누워 칼잡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5 씨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 부터 미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29쪽 )

 

" 돌이켜보면 강물의 치열함도 사실은 강물의 본성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땅으로 인하여 그렇게 달려왔을 뿐입니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소한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 ( 나무야 나무야 )

 

"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입니다 .

 

" 모든 텍스트는 언제나 다시 읽히는 것이 옳다  필자는 죽고 독자는 끈임없이 탄생하는 것이다 "   (담론 )

 

175페이지에서 내가 가끔 글에 인용했던 이문구씨의 " 지금은 꽃이 아니라도 좋아라" 의 산문집에 나온 글을 대했다.

어찌나 반갑던지... 교수님은 그 글의 출처도 정확하게 기록해 놓으셨다.

 

 

" 나는  들판을 기웃거리다가 전에는 미쳐 몰랐던것을 깨달았다.  사람에게 봄기운을 가장 먼저 가져오는것은 가꾸고  가꾸어준

꽃나무보다 밟고 베어냈던 잡초라는 것을 들풀은 모진 바람 속에서도 잔설을  이고 자랄뿐 아니라 그렇게 자라는 풀잎마다 아쉬운 사람들이 나물로  먹어온것도 ....  "

 

내가 너무도 공감했던 글을   교수님도 공감했구나  반가웠다.  여고졸업하던 그해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이 글귀를 신영복 교수님의 책에서 다시 만나다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래전에 씌여진 옥중 서간문들이지만 교수님글은 지금도 단단한 눈뭉치가 되어  이마를 때립니다. 교수님 안타깝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배는 고픈데  아직 일어설수가 없다.   네시반  이제 일어섭니다.

 

                                                                                                                  2016. 1. 16일 오후 네시반 바오밥에서

[봉별 : 윗사람과의 헤어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