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청매화 - 박규리

하동댁 2021. 2. 3. 13:17

사진출처  카스에서 

다른길은 없었는가 

청매화 꽃잎 속살을 찢고 

봄날도 하얗게 일어섰다 

그 꽃잎보다 푸르고  눈부신 

스물세상 청춘 

오늘 짧게 올려 깎은 머리에서 

아직 빛나는데 

네가 좋아하는 씨드니의 푸른 바다도 

인사동 네거리의 생맥주집도 그대로다 

그사람 떠나고 다시 꽃 핀 자리마저 

용서했다더니 

청매화 꽃잎 꿈결처럼 날리는, 오늘 

채 여물지도  않은 솜털들을 

야무지게 털어내다니 

정말 다른 길 없었느냐 

새벽이면 동학사로 떠날 

이른 봄 푸른 이끼 같은 아이야 

여벌로 더 장만한 안경과 

흰 고무신 한 켤래 머리맡에 챙겨놓고 

잠든 

너의 죄 없는 꿈을 마지막으로 쳐다보다 

눈부시도록  추울 앞날을 위해 

이 봄날, 떨리는 손으로 두툼한 겨울 내복 

두벌 

가방 깊숙이 몰래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