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너를 새기다 - 고두현

하동댁 2020. 5. 1. 12:53





다랭이 마을에서

앵강다숲길로 접어들 때

너는 말했지


필사란 누군가를  마음에 새겨 넣는 일

그 속으로 가장 깊이 들어가는 것


일흔 괴테와 열아홉의  울리케가 밤마다

먼 입맞춤을 봉인하던 마리엔바트의 비가처럼

나도 몸속 나이테  깊이 너를 새겨 넣을 수 있다면,

책갈피 넘길 때마다 한 소절씩

네 속에 빗살무늬 노래를  그려 넣을 수 있다면,


해변의 나무들이 일제히 몸을 뉘일 때

그 쪽으로  고개 돌리는 네 흰 목덜미

그 눈부신 압보를 받아 적을 수 있다면,


층층계단  다랭이논길 따라

앵강만 달빛이 흥건하게 우릴 적시던

그날 밤의 긴 여로처럼


너를 새기다

바래길 연가 앵강다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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