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입구에 봄이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개다리 소반에 노지에서 갓 따온
황새냉이와 박구재미, 달래 등이 한데 뒤섞여도
자식 알아보듯 냉이만 골라내어 다듬고 있는 할머니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자릿세를 받으러 온 봄볕만 몇 차레 눈길을 줍니다
먼데서 완행열차를 타고 왔다는 할머니가
시금치와 상추를 그 옆에 풀어놓습니다
좌판에 나란히 앉아 긴 생 돌아온
골목길의 오랜 적막을 묻습니다
그사이를 비짐고
누이와, 황새냉이를 한 바구니씩 캐던
어린 시절이 끼어듭니다
손수건에 싸온 밥은 내게 내밀고
풋것을 캐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누이의
푸른 입술도 데려오는 봄은 때론 눈물입니다
할머니가 아직은 덜 익은 햇살을 뚝, 따서
냉이가 담긴 비닐봉지 안에 덤으로 얹어줍니다
비닐봉지를 열자
매운 바닥을 견뎌 낸
황새냉이의 향기
소쩍새와 쑥국새 울음소리에 기대어 서쪽 하늘을
털어내던 푸른 누이가
코끝으로 스며듭니다
머지않아 할머니를 태우고 온 완행열차가
누이를 데리고 먼 마을로 떠나면
좌판에 깔아두었던 하루가 왈칵 쏟아져
내리겠지요
냉이국에 올라오는 오늘 저녁은
누이의 얼굴 같은 달이 핑계 좋게 뜰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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