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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La Maritza(마리차 강변의 추억)/ Sylvie Vartan

하동댁 2010. 9. 5. 14:17

 

 

  
La Maritza .. Sylvie Vartan

 

 

 

 

 

 

    '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 ' .. '실비 바르땅'은 프랑스 가수이지만..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나 눈이 못생겨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미셸 뽈나레프(Michelle Polnareff)'처럼 전통적인 '샹송가수'는 아니고, '프랜치 팝싱어'로 구별해도 무방합니다. '실비 바르땅'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었던 프랜치 팝을 개척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 . 그녀는 1944년 8월15일 불가리아 소피아 태생으로 8세때 부모의 손에 이끌려 고향을 떠나 프랑스로 탈출하였다. 소피아는 유럽 남동부에 위치한 불가리아 수도이다. 그녀는 1963년에 발표한 'Quand Le Film Est Triste'가 각종 인기차트를 석권하면서 일약 젊은 세대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무드 가득하고 문학적인 샹송보다는 과감하게 록큰롤을 혼합한 호쾌한 음악, 기존의 여가수들이 보여주던 다소곳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한 그녀의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와 부합되어 최고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던 프랑스출신 미남스타 가수인 '조니 할리데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는 그 당시 대단한 화제를 불러모으며 1965년 결혼을 한 후 그 이듬해 여름에 아들 다빗 할리데이를 낳았다. 다빗 할리데이는 부모의 음악재능과 빼어난 용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현재 인기가수로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이토록 행복한 '실비 바르땅'을 운명의 신이 질투라도 하듯 그녀에게 '안나 게르만'과 흡사한 모진 시련이 다가온다. 1968년, 1970년 두 차례나 겪은 대형 교통사고는 그녀의 가수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재기가 어렵지 않겠냐는 세간의 예상을 불굴의 의지로 깨뜨린 그녀는 지금 흘러나오는 불후의 명곡 'La Maritza'를 발표한다. 'La Maritza(라 마리짜)'는 불가리아에 있는 '실비 바르땅'의 고향 이스크레츠를 끼고 흐르는 강인데, 불가리아의 릴라 산맥에서 발원해 발칸 반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불가리아를 상징하는 강이다. 따라서 그녀 가족에게 마리짜강은 자유를 그리는 희망의 상징이었는데, 이 노래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슬픈 노래이지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라는 가사 속에서 'Sylvie Vartan'이 느껴야 했던 것은 아픈 추억들뿐이었답니다. 1968년 파리에서 녹음한 이 곡은 흘러온 시간과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채울 길 없는 목마름, 무엇보다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의 향수와 자유, 그리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등 이런저런 회한들이 얽혀져 있는 내용들이 노래의 주 가사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를 어린시절 부모 손에 이끌려 조국인 불가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을 온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지만 한번도 자신이 불가리아인이란 걸 잊지 않았다고 한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멋대로 날뛰던 공산주의 독재자들이 무너지면서 조국 불가리아가 자유화되자 1990년 10월 고향을 떠난 지 38년이 지난 40대후반 중년 나이에 꿈에서도 그토록 그리던 조국 불가리아를 찾았다. 동터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아침에 모국 불가리아에서 가진 '실비 바르땅'의 귀향무대는 가슴이 벅찼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국립극장에서 콘서트에서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듯 가사를 음미하며 원숙하고 감회어린 목소리로 이 곡을 노래하였고, 조국의 청중들과 눈물의 회한을 풀면서 "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늘입니다. 철없던 8살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여러분들을 떠났기에 지금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상상이 안될 겁니다. 이제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그 아름다웠던 유년기를 되찾은 느낌입니다. 똑같은 집들과 풍경들, 어릴 적 내가 놀던 마리짜의 강물도 여전하겠지요.마리짜는 영원한 나의 강입니다 " 라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청중들에게 했던 이 말은 그녀의 모든 애환이 다 서려있지요. 그녀는 이 곡을 부르는 도중 그만 한없이 눈물을 흘려 공연이 잠시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센 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마리짜는 나의 강입니다. 그러나 지금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회상하는 것은 나의 아버지 뿐.. 처음 10년간의 추억은 나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가엾은 인형과 옛날의 보잘 것 없는 후렴구 외에는 아무 것도.. 내 강의 새들은 모두 우리에게 자유를 노래하고 있었어요.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죠.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다만 듣고 있을뿐.. 지평선이 훨씬 멀어졌을 때, 새들은 모두 희망의 길 위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뒤를 쫓아 우린 온 거예요. 파리로..

           

           

           

           

           

           

          출처 : 김상훈의 관객
          글쓴이 : 바람처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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