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효
열여덟 그 겨울에 에밀리를 만났다 찰즈 디킨즈 영감이 소개한 외로운 처녀 에밀리 집안 좋고 부자에 또 잘 생긴, 스티어포스가 유혹했을 때 에밀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둥둥둥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왔지만 끝내 바람둥이 그를 따라 나섰다 그에게서 버림받았을 때 시름시름 앓다 죽고 말았을 때 하릴 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고아 데이비드 ․ 커퍼필드, 아아니 나는, 시나부랑이 끄적이며 짝사랑의 아픔을 견뎠다 수십 년이 지나 런던 뒷골목을 걷는다 어디선가 나타난 찰즈 디킨즈 그 영감이 미안한 듯 히죽이 웃고 막 골목 모퉁이를 돌아가는 에밀리를 보았지만 끝내 나는 부르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고 음악에 열중하던 시절, 권재효 시인의 詩, <억새꽃>을 우연히 읽고 한동안 그 환상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한적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현실로 돌아 올 줄을 모르고 그 환상을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나이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하루, 차를 몰아 서해대교를 타고 안면도로 해서 채석강으로, 군산을 거쳐 울산 울기등대 아래로, 포항, 목포, 울진, 정동진을 지나 속초까지 와서 설악산을 넘어 돌아왔다
나를 해안도로로 떠돌게 했던 그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서부관광도로를 가다가 / 눈처럼 하얀 바다를 보았다. 나의 차도 물결에 휩쓸렸다 / 나의 차는 작은 잠수함이 되어 / 바다 속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었다 / 신비한 음악 소리가 들리고 / 봄부터 가을까지 쏟아진
누군들 이런 시를 읽으며 취하지 않고 환상속으로 말려들지 안겠냐마는 나는 그 당시 40대를 넘기는 적잖은 나이에 돌입하면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 몽롱한 의식속에서 꿈을 꾸거나 술을 마시며 더 이상 젊음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 피치를 올려 뭔가 남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도취해 있었다.
어찌했든 그 허황하고 객기어린 40대의 마지막을, 그렇게 해안선을 따라 권재효 시인의 시 한 편을 가슴에 품고 돌고와서 다시 순응하고 받아드릴건 받아드리며 다시 세상을 살아냈다.
그러다가 오늘, 다시 그의 신작 詩, <런던 뒷골목을 걷다가>를 읽었다 역시 <억새꽃>이후 많은 해가 지났는데도 그의 환상적인 사념[思念]과 문체의 색채는 그대로이다. 아마도 詩 제목 그대로 런던의 거리를 걸으며 첫사랑을 떠올렸으리라 여기서의 첫사랑, 에밀리란 자신의 애인일 수도 있고 자신의 지나간 청춘을 뜻할지 모른다 찰즈 디킨즈 영감이란 우리가 알듯이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영국작가이다 * 찰즈 디킨즈 1812-1870. 빅토리아 조 시대를 대표하는 영국의 소설사. 주로 하층계급을 주인공으로 하여 약자의 입장에서 사회를 풍자한 소설을 썼다. '올리버 트위스트' '크리스마스 캐럴' '데이비드 코퍼필드' '위대한 유산' 등 집필. 에밀리는 '데이비드 코퍼필드'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이렇듯 현명한 나이든 영감이 소개한 첫 사랑 에밀리. 즉 에밀리는 자신의 지난 젊은 시절의 이상이었고 찰즈 디킨즈 영감은 지금 현재의 현실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 외 그의 시를 읽고 싶다면 http://blog.daum.net/jejuyka/738 로 들어가 보시기를. From Lisbon To Istanbul - A Musical Journey
07. Caro Diario - Nicola Piovanim - It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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