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이병률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하동댁 2017. 4. 5. 06:15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에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 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