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스크랩] ‘운앤율’의 시와 개불알풀꽃

하동댁 2015. 8. 24. 08:42

 

♧ 세월은 간다 - 고성기

 

4월이 아무리 익어도

피지 않고 지는 꽃도 있다.

*황무지 가득 덮어 뚝뚝 지는 잔인한 달

**세월호

세월을 묻고

문 닫아 삼킨 바다

 

2014년 4월 16일

초침까지 멎은 아침

산 자는 모두 죄인 하늘 향해 두 손 모은

그러나

신은 없었다

무책임만 있었다.

 

퍼렇게 봄날은 간다

빨갛게 동백은 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역사가 준 묘약이려니

긴 겨울

그리 밟아도

청보리 피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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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 엘리아트의 ‘황무지’

** 세월호 인천, 제주를 잇는 6,800톤급 국내 최대 여객선

   

 

♧ 짱뚱어와 농게 - 장승심

 

짱뚱어들 폴딱폴딱 이리저리 꼬불꼬불

신안증도 갯벌은 짱뚱어 마당인데

잡을까 생각만 해도

저만치 도망가네

 

왕집게발 농게들 슬금슬금 눈치코치

신안증도 갯벌에 집 만들랴 경계하랴

저리가

집 지키느라

더위도 잊고 있네

   

 

 시, 들어간다 - 이소영

 

명주실에 지워진

어느 가야금 명인의 지문

긴 약력처럼 선명히 찍힌

지문조차 부끄러운 날

 

내 안을 재검색하다 알았네

 

깊고 실한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서둘러 시의 꽃만 피우려다

시들어

시, 들어간다는 걸

   

 

♧ 꽃비 - 이무자

 

핏기 없이 다문 파리한 입술

늘어진 소매 자락 끝으로

초점 잃고 너울거리는 춤사위는

평생 한으로 들먹이는

울 할머니 소리 없는 흐느낌

아직도 삭히지 못한 불씨

울부짖는 통증으로

허공을 떠돌다

시리고 아린 바람에 터트린 울음

꽃비 되어 4월의 대지를 적시니

허기진 영혼 뉠 곳 찾아 거리를 기웃될 때

상춘객은 깔깔거리며 그 길을 걸어간다

   

 

♧ 귀향 - 이명혜

 

해거름녘

시름 한 보따리 걸머지고 나 되돌아간다

그곳엔

단지 내 몸 한 가닥 뉘일 작은 방 하나

구석구석 후각으로 다가오는 이야기

잠시 머뭇거리던 어린 시절

와락 다가와 안기다

원시의 흔적으로 남겨진 뻐근한 그리움

모두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모두 용서받을 수도 있을까?

사방을 둘러본다

   

 

♧ 완도항 스케치 - 양민숙

    -완도 등대

 

끊긴 진주목걸이에서

알알이 흩어진 저 진주알들,

저 섬들,

만날 듯 만날 듯

애태운다

 

오가는 사람들

무게를 덜어내는 곳

나선형 줄 따라

치렁치렁 서글픈 사연 흐르는

완도 뱃길,

그 길을 붓질하다

핏줄처럼 터지는

저 물결

   

 

♧ 서는 곳이 다르면 - 안상근

 

서는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지듯이

 

골에 서면

나무만 보이고

능선에 서면

숲만 보이더라

   

 

♧ 아버지는 목수였다 - 송창선

 

아버지는 목수였다

나무를 자르고 깎아

작은 세상을 만들었으나

정작 아버지의 세상은 아니었다.

 

정과 못을 세상을 향해 내리쳤으나

아버지의 삶에 박혔다.

 

때로 봄날 대팻날 같았으나

세월 앞에 무디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목수연장이

삶의 무게만큼

고향에 남겨졌다.

   

 

♧ 무제 - 권재효

    -달빛 이미지

 

싸늘한 달빛

청솔가지에 앉아 있는

저 무정한 것

 

돌아선 이의 뒷꼭지에

피어나는

예쁜 독버섯

 

어느 땐가는 풀어야 할

당신과 나의 숙제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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