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정호승
지은 죄가 많아
흠뻑 비를 맞고 봉은사에 갔더니
내 몸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손등에는 채송화가
무릎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야윈 내 젖가슴에는 장미가 피어나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에 가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토록 가시 많은 나무에
장미같이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고 생각하라고
장미는 꽃에서 향기가 나는 게 아니라
가시에서 향기가 나는 것이라고
가장 날카로운 가시에서 가장 멀리가는 향기가 난다고
장미는 시들지도 않고 자꾸자꾸 피어나
나는 봉은사 대웅전 처마 밑에 앉아
평생토록 내 가슴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가시를 힘껏 뽑아내려고 하다가
슬며시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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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곳에서 다시 삶이 시작된다고
피투성이가 되어 눈물을 흩뿌리는 그곳에서
다시 삶의 빛을 잡으라고
내안의 문을 열고 바깥 그 너머의 곳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꿈의 언어와 시인의 마음과 화가의 마음과 벗들의 시선과
해의 온기가 나의 발버둥에 응원을 보낸다
출처 : 시가 있는 동네
글쓴이 : 생각하는나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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