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보와 리뷰

[스크랩] 염불(念佛)처럼 서러워서 (작은숲)10

하동댁 2014. 12. 16. 21:20

 

 

 

 

 

 

 

김성동 작가가 역사를 잊어가는 시대에게 건네는 역사 이야기

-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친일파 후손들에게 권하는 필독서

-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음을 서럽게 만드는 책

- 시대가 가르치지 않았던 역사, 그래서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 이야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2013년 7월 28일 잠실종합운동장. 한국과 일본이 맞붙은 동아시아컵 축구 경기가 있었다. 붉은 악마 응원단에서 신채호 선생 말씀을 적은 거대한 흰색 천이 내려왔다. 당시는 일본의 우경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독도 망언과 일본 정치인들의 공공연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어지던 때였다. 역사를 왜곡하고 과거사에 대한 사죄 없이 망언을 일삼는 일본에게 보내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로 읽혀졌다. 일본 응원단은 이에 대응하듯 ‘욱일승천기’를 내걸었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사라진다”

그로부터 약 1년 후인 2014년 9월, 일찍이 <만다라>로 세상에 이름 석자를 알렸던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양평에 칩거한 지 수년 만에 출간한 <염불처럼 서러워서>(작은숲출판사) 뒤표지를 장식한 말이다. ‘다카키마사오’라는 이름으로도 모자라 ‘오카모토 미노루’로 창씨개명을 하고 “대일본제국 천황폐하 황은에 보답하고 이 한몸 죽여 대일본제국을 만들겠다.”는 혈서를 써 바쳐 일본육사에 입학했고,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 사쿠라 꽃잎처럼 장렬하게 산화하겠다.”고 만주군관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선서한 사람을 18년간이나 대통령으로 모셨고, 국정원과 군인들의 댓글에 힘입어 대통령이 된 후에도 302명의 어린 생명을 진도 앞바다에 수장시킨 책임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대통령으로 떠받드는 시대에, 어찌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미래가 없는 민족’은 일본이 아니라,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그래서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 <염불처럼 서러워서>는 대한민국 국민임을 서럽게 만드는 책인지도 모르겠다.

 

친일파의 후손이 득시글거리는 시대

누군가에게 이 시대는 행복시대이고, 누군가에게 참혹시대이다. 지금을 행복시대라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고 불온세력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의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을까?

“다카키 마사오의 충용한 신민들이 모여 만든 정당에는 당연히 친일파들이 득시글거린다. 일제 때 군수를 하고 면장을 하고 헌병군조를 하고 고등계 형사를 하고 일제 군경과 다름없던 각급학교 교장, 교감, 교원을 하고 왜검사 밑에서 ‘고쓰카이’질 하다가 해방되면서 검사로 판사로 변호사로 올라선 이들과 그 자식들이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당대표도 하였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후보도 하였다. 대통령도 두 명이나 하였다. 현역 장관도 있다. 33인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이가 일제 밀정이었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리고 그 손자가 국회의원으로 있었다는 사실도 안다.”

행복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국회와 정부에 있다는 말이다. 김성동 작가의 비판은 추상같이 계속 이어진다.

“할아버지가 나라를 판 대가로 일본제국 황제한테 하사받은 돈으로 산 땅을 되찾겠다며 대한민국법에 호소한 이완용 후손들 손을 들어준 행정법원 판사 출신도 국회의원으로 있다.”

김성동 작가가 지목한 그녀는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사람으로 2014년 총선에서 동작구를 강남2구로 만들겠다면서 국회에 입성했고, 모르고 갔다고는 하지만 일본 자위대 창립기념 행사에 당당히 참가했던 것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주어가 없다’면서 BBK 사건을 비호했던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대표적인 친일파로 모 사학재단의 이사장이었다. 그러나 친일의 족적이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야를 막론한다.

“일제 때 지주와 자본가들이 손잡고 만든 한국민주당 법통을 잇는다는 소위 야당 국회의원 가운데도 친일파 후손들이 득시글거린다. 이런 자들이 다스리는 이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니다. 원칙도 기준도 없으며, 아름다움도 없고 추함도 없으니, 흑백이 없는 세상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오직 한 가지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돈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는 김성동 작가의 눈가에는 어느새 핏발이 서 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서러움과 한 그 이상의 무언가가 배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기에 칠순을 바라보는 노작가에게 이런 책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일까? 김성동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시대는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본 만능의 막세상이다. 자본이 역사까지 왜곡하고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세상. 그 자본 앞에서는 여야불문이다.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될 것인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한국사 책에서 배운 역사가 역사의 전부일까? 진실일까? 이런 한두 번쯤 이런 궁금증에 시달려 봤을 것이다. 무조건 외워야 했던 한국사조차도 선택과목이었던 시대를 거쳐, 지금은 한국사 교과서를 다시 국정으로 만들어 정권의 교과서로 만들려고 획책하는 시대이지 않은가.

학창시절 배운 우리 역사는 그렇게 자랑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정쟁과 반정이 끊이지 않았던 조선, 양반 등 기득권층의 부정과 비리, 그에 항거한 동학농민군 등의 처절한 실패, 연이어 조선을 점령한 일본, 외세에 의해 근대화된 나라, 애국계몽운동과 해외독립무장투쟁, 그리고 찾아온 해방과 분단, 반공이 국시였던 긴급조치시대, 그러나 수출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 등이 한국사의 주요 테마였다. 어느 구석을 찾아봐도 자랑스럽게 여길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별 볼 일 없는 역사지만 지금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국정 교과서 시대에 배운 한국사는 현 정권의 홍보를 위해 지난 역사를 과도하게 축소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소위 뉴라이트 그룹에서는 일본을 우리나라를 근대화시킨 은인이라고 추켜세우지 않는가.

김성동 작가가 바라본 우리나라 역사는 패배했지만 웅장했던 역사이다. 소위 ‘비단할아버지’들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거적자손’이 되기 위한 지름길이다.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 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패자의 남겨진 자손들은 말이다.”

승자들의 역사라는 인식은 아주 현실적인 인식이다. 그들이 자기 멋대로 역사를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성동 작가는, 그렇다고 해서 패자의 자식들인 우리가 탄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머리말을 맺고 있다.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배우자는 것이다. 그 진실을 감추고 잘 가르치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에 김성동 작가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냈다.

“이 책이 많이 나가야 합니다. 단순히 인세를 많이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요. 거짓과 가짜가 판치는 시대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친일파 후손들에게 보내는 힐링과 참회의 권고

친일파에 대한 논쟁이 한창일 때 그 후손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후손들이 친일파는 아니지 않는가.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그들에게 할아버지가 겪은 친일행위 죄값을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시대 친일 하지 않은 사람이 있나.”라고 말했다.

그렇다. 일본과 친한 것이 뭐 죄라도 되는가. 그리고 총칼을 들이대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친일을 안 하고 배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친일행위로 인해 내 동포, 내 가족이 죽었다면 사정은 다르다. 또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부역한 것을 어찌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있단 말인가. 내 아버지의 친일행위로 인해 내 친구가, 내 연인이, 내 선생님이 죽었다면,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사죄의 마음으로 아버지의 죄를 짐으로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위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지금의 대통령이나 여당의 대표는 어떤가. 또 야당의 인사들은 어떤가. 부끄럽게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들보다 더 혹독하게 야비하게 힘없는 백성들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책은 김성동 작가가 친일파 후손들에게 보내는 힐링의 메시지요, 역사의 진실이 담긴 학술서이며, 참회와 고해성사를 바라는 편지이다. 자기를 낳고 길러준 아버지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역사의 몫이다. 그 몫을 제대로 해내는 길은 역사의 진실을 알고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내일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본문 속으로

 

친일, 그 악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고서는 - 친일의 계보(1장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요? 본문 32-33쪽)

조선왕조 말엽의 탐관오리와 아전배 자손들이 친일파가 되었고, 친일의 대가로 받은 왜왕 하사금을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였으며, 그렇게 쌓은 물적 기반으로 자식들을 구미유학 1세대, 도미유학 1세대, 도일유학 1세대로 만들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제일세계 학문을 배워 오게 되었고, 그렇게 배워온 최신 학문을 배경삼아 각계 상층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도표로 만들어 보면, 조선조 말 탐관오리와 아전배 → 친일파 → 미제국주의 세계 지배 전략인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친미파 → 오늘의 수구 기득권층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대를 물려 부와 권력을 세습하고 확대재생산하는 이 악의 고리를 끊어 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친일친미 모리배들은 수십 억짜리 아파트와 빌라에서 록키산맥 생수를 마시고 계약재배한 무공해식품을 먹고 수백만 원짜리 ‘와인’으로 고기 많이 먹어 느끼한 속을 달래고 나온 입으로 “반공만이 살 길이다!”고 부르짖으며 대미제국 황제 부시 초상화와 성조기를 휘두르고, 양심적인 진짜 선비와 땅을 부모로 알고 살아온 기층농군 자손들은 월세 십만 원짜리 지하 단칸방과 옥탑방에서 막노동꾼 식당 잡부로 살고 있는 것이다.

 

왜구는 대륙백제의 후손들이고, 일본 천황은 백제의 후손이다?(2장 화교가 되어 버린 대륙백제 사람들, 본문 50-51쪽)

후백제를 세운 진훤 황제는 893년쯤부터 30여 년 동안 오월국吳越國 과 사신을 주고받으며 여러 벼슬자리와 “고려와 평화롭게 지내라.”는 황제 편지를 받기도 하는데, 대륙백제와 이어지는 끈을 되살려냈던 것이 되네요. 중화주의자들은 이제 강소성 남녘과 절강성에 복건성 동북부를 아우르고 있던 오월국을 “장강 아랫녘 오랑캐들이 잠깐 세웠던 조그만 나라”라고 깎아 내리고 있지만, 참으로는 절강성 항주에 서울을 두고 황제가 다스렸던 짱짱한 나라였지요. 오월국 황제는 그리고 바로 만주와 산동반도에서 발해와 한족들한테 밀려 내려온 대륙백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후삼국을 일통시킨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첫코떼어 현종 때까지 이어진 동이족 연대모임이었던 ‘팔관회八關會 ’에 사절을 보내며 반도백제와 겯는 어깨를 풀지 않습니다. 절강성 얼안을 차지하고 공민왕 때 여러 차례 사절단을 보냈던 방국진 方國鎭 ·장사성 張士誠 은 중국 동해안을 주름잡던 대륙백제 남겨진 백성들이었습니다. 대명제국을 세운 주원장 朱元璋 에게 거세차 게 앙버티던 이들이 열반한 다음에도 끈덕지게 싸우다가 고려로 도망쳐 온 진군상陳君祥 또한 대륙백제 얼 이어받은 이였구요. 그들은 빼어난 목대잡이들이 사라진 다음에도 이제 상해 밑 주산군도를 바탕자리로 하여 대명제국을 괴롭히니, 이른바 ‘왜구’입니다.

천체물리학을 갈닦는 어떤 학자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신라 쪽 날씨 적바림을 컴퓨터로 맞춰 보았다고 합니다. 여러 천 년 전 기상관계 현황들도 한 치도 틀림없게 맞춰볼 수 있는데, 무슨 까닭으로 곰나루와 서라벌 쪽 날씨와 맞지 않더라네요. 그래서 에멜무지로 중국대륙 쪽으로 옮겨 보았더니 딱 떨어지게 맞더랍니다. 백제·신라 원둥치가 대륙 쪽에 있었다는 틀림없는 본메본짱이 되네요.

그때에 열도백제를 다스리던 천황은 제명 齊明 곧 사이메이였는데, 그 여자는 반도백제 무왕武王 딸따니입니다. 열도백제 서울이 경도京都 곧 교토니, 대백제제국 서울은 세 군데가 되는군요. 의자왕義慈王 누이가 사이메이 여왕입니다. 손위가 되는지 손아래가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의자왕과 사이메이는 오누이가 됩니다. 무왕 왕비가 사택씨沙宅氏라는 새김돌이 요즈막 익산 미륵사터에서 캐어 내지기까지 우리는 백제 서동왕자薯童王子와 신라 선화공주 善花公主가 혼인하여 무왕과 무왕비가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무왕이 낳은 아들딸이 모두 36명이랍니다. 그 아들 가운데 하나가 의자왕이고 딸 가운데 하나가 사이메이인 것이지요. 동기간이 다스리는 아버지 나라가 나당 연합군에게 무너졌다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 들은 사이메이는 구주九州 아사 쿠라노미에라는 데다 항당원제 抗唐援濟 바탕자리를 세우고 1천 척 싸움배에 2만 7천 싸울아비들 실어 반도백제로 보냅니다. 그리하여 부여풍 扶餘豊 과 부여복신 扶餘福信 , 승려 도침 道琛 , “7척이 넘는 키에 용맹스럽고 지략이 있던” 필리핀 또는 인도네시아 출 신 장군 흑치상지 黑齒常之 같은 이들이 다시 세운 것이 광복백제였습니다. 그랬는데 복신은 도침을 죽이고 풍은 또 복신을 죽이는 집안싸움 끝에 3년을 못 넘기고 광복백제는 그 가림천을 내립니다.

 

대웅전은 환웅을 모셨던 곳이다?(4장 마하 묘청 보살 마하살, 본문 154-155쪽)

부처님 모신 데가 대웅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통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생 들을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이끌어 주시는 ‘큰 영웅’이 부처님이므로 ‘대웅전’이라고 이름 단 것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환인桓因 자손 환웅桓雄을 모셨던 데가 대웅전이라고 하면 놀랄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것은 진짜입니다. 환웅 이름인 ‘굳셀 환 桓’ 자를 ‘큰 대’자로 바꾸었던 것이니, 선가와 불가가 ‘윈윈’을 하였던 것이지요. ‘이차돈 죽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뒤에 굴 러 들어온 돌로 이미 있어 왔던 박힌 돌인 선가한테 따돌림당하던 끝에 안방 차지를 하게 된 불가에서 선가를 끌어안았던 것이고, 선가 또한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 불가 속으로 스며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대웅전 수미단須彌壇 위에 석가모니 부처님과 쌍노라니 앉아 중생들이 올리는 마지밥받아 저쑵던 환웅님이었는데, 불교 쪽 힘이 세어지면서 시나브로 밀려나기 비롯해서 마침내 대 웅전 뒤란 후미진 산속으로 쫓겨나게 되었으니, 산신각山神閣이 된 것이었습니다. (중략)

환인은 한님이니, 곧 하느님을 진서로 쓴 것이지요. 하늘 → 하느 → 한이 된 것입니다. 하느님 명받아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檀樹 밑으로 내려와 신시개천神市開天 한 이가 환웅이니, 또한 하느님이시지요. 환웅이 아니라 한님으로 읽어야 하는 까닭이올시다. 대전大田을 전에는 태전太田 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은 한밭이라는 우리말을 진서로 바꾼 것으로 대천大川이 한내인 것과 마찬가지니, 대웅전은 본디 한울림집 → 하느님집인 것입니다. 수미단 위에 좌정하고 계신 석가모니 부처님과 이만치 떨어진 옆댕이 신중단神衆壇 이란 데서 부릅뜬 고리눈으로 금강저金剛杵 을러메고 있는 신장 神將 님도 환웅님 또는 환웅님 자손인 치우천황님인 것입니다. 1960년대 끝 무렵 산문 山門 에 있을 때 망백望百 도 훨씬 넘는 극로비구極老比丘들한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산신각이나 신중단만이 아니라 이제도 절 집에서 칠성님이니 용왕님이니 조왕님이니 하고 뫼시는 이른바 ‘무속 신앙’들이 죄 환웅님, 곧 하느님 그림자인 것입니다. 똑같이 불교를 받든다지만 이런 것들은 우리나라에만 있지요. 중국이나 일본 또는 동남아시아 절에 ‘대웅전’과 ‘산신각’·‘칠성각’은 없습니다.

 

일본 천황에게 받은 돈으로 은행, 학교 세운 금송아지 대감, 민영휘(8장 망나니, 철갈구리, 금송아지 그리고 농투산이, 본문 229-230쪽)

하늘과 사람이 한가지로 성낼 매국역적 집안을 가리켜 자꾸 명문거족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개발에 편자요 돼지우리에 주석 자물쇠를 다는 격이라 입이 쓰지만, 민영휘가 나라에서도 첫째가는 부자였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요즈막 말로 하면 대재벌이었지요. 재물 덩치가 어느 만큼이었느냐 하면, 이른바 십만석 군이었습니다. 갑오·을미년 사이에 거두어 들인 곡식이 13만 석쯤이었다니 해마다 들어오는 거둠새를 10만 석으로만 치더라도 그때 돈으로 해마다 50만 원이 넘습니다. 그렇게 어처구니없는 거둠새가 올림대 놓는 1935년까지 이어졌으니, 적게 잡아도 2천 만 원이 넘습니다. 이제 돈으로 쳐도 해마다 5백억 원이 넘는 거둠새이지요. 한때 4천만 원이 넘기도 하였다니 몇 조 원대 재벌이네요. 그때 사람들은 왜국 재벌인 스미모토, 미쓰비시, 미쓰이에 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재벌로 꼽았답니다. 1936년 이제 민영휘 재산은 4천만 원(현재 시가로 4조 8천억 원) 크기였 다지요. 민영휘는 본마누라한테서 자식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눈엣가시를 보아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본마누라 앞으로 들어앉힌 양아들과 시앗한테서 본 자식들 사이에 제 살 뜯기 개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잡지에서는 4쪽에 걸쳐 시시콜콜 지저분한 개싸움 속내를 적어 놓고 있는데, 민 금송아지가 무슨 짓을 해서 재벌이 되었는지는 밝히지 않습니다.

민 금송아지가 쌓은 재물은 농군들한테 홀태질한 배메깃돈만이 아니었습니다. 왜국에 나라를 판 삯으로 ‘대일본제국 천황폐하’한테서 받은 합방유공자 은사금만 십 수만 원이었고, 경성 시내에 백만 원 위 가는 부동산과 이제 인사동에 아방궁을 짓고 4대 문 밖에 으리으리한 별저를 가졌으며, 또 이제 전 한일은행인 대 한천일은행을 세우는 데 백만 원을 던지고 있습니다. 1906년에는 제 이름자를 딴 휘문의숙 徽文義塾 을 세워 이른바 애국계몽운동을 하는 듯한 잔뇌를 굴리기도 하지요.

 

<녹두가>의 녹두꽃은 전봉준이 아니라 김개남이다?(9장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 짚신과 워커, 본문 261쪽)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사 울고간다

녹두꽃은 개남장이고, 파랑새는 관군이며, 청포묵장수는 백성을 가리킵니다. 구름처럼 미좇아 오며 아우성치고 노래 부르는 백성들 서슬에 놀란 전라감사 이도재 李道宰(1848~1909) 는 서울로 올려보내야 하는 것을 그만두고 곧바로 목을 잘라 버립니다. 전주 남문 싸전다리 건너 남쪽에 있는 초록바위에서였지요. 전봉준 또한 믿었던 심복 김경천金敬天 이 쏘개질로 붙잡혔는데, 아무도 미좇아 가는 백성이 없었습니다.

왜병이 갈겨대는 크루프 기관포에 맞기 전에 벌써 꽃잎처럼 떨어질 수밖에 없는 농민군이었으니, 또한 신발이었습니다. 신발과 옷차림이었습니다. 양털 달린 방한복 입고 방한 양말에 방한 가죽장화 신은 왜병과 관군은 최신 서양 병장기인 크루프 기관포에 양총 들고 덤비는데, 솜도 안 둔 무명 핫바지저고리에 짚신감발로 기껏 꺾은대라고 불리우던 화승총과 대창 든 농민군이었습니다. 몰아쳐 오는 북풍한설에 눅진눅진 젖어 버린 핫바지저고리요, 질퍽거리는 짚신 속발은 또 얼음이 박혀 금방이라도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습니다.

 

의병들 사이에서도 반상의 차별이 있었다?(10장 용문상 총댕이 김백선 장군, 본문 297-298쪽)

“......사람을 좋아하고, 단엄한 범절을 지키는 사람은 미워하여 입암을 비롯하여 이하 노소 사류士類는 상투를 끄들리고 뺨을 맞는 욕을 당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더욱이 민의식은 안에서 속삭이고 여러 사람을 밖에서 헐뜯으니, 김백선은 안승우에 대하여 이를 갈며 군사 軍事를 문란케 하고 장명將命 을 거역하는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으나, 선생(류인석)은 그의 선창한 공을 보아 관대히 용서하고 포용한 적이 역시 한두 번이 아니었다.”

김백선 장군 됨됨이와 마음씨를 적어 놓은 것인데, 이 글만 보면 모질고 사나우며 터무니없이 흰목이나 쓰는 거친 악소패, 곧 요즈막 문자로 깡패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짜장 그러한 것일는지? 이 글은 먼저 김백선 장군을 처형시킨 양반계급 눈길을 보여 주는 것으로 봐야 하니, 김백선은 포수였습니다. 그것도 용문산 넘나들며 범 잡던 멧총댕이 도꼭지였지요. 얼굴 하얗고 손목 가느다란 책상물림 선비들과는 그 타고난 됨됨이부터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그리고 무엇이 옳고 무엇 이 그른 것인지를 타고난 바탕에서 알고 있는 어씁한 무인이었습니다.(중략)

중전마마가 왜놈들한테 끔찍한 죽임을 당한 다음 민종식閔宗植은 홍주에서, 민승천은 안성에서, 민긍호閔肯鎬는 원주에서, 민용호閔龍鎬는 강릉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여주 민판서 사촌아우였던 민의식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평민 의병장 밑에 종사로 들어가게 된 까닭이지요. 더구나 류인석은 자기를 따르는 여러 문인과 양반들에게 김백선을 우러러 모시라는 땅불쑥한 부탁을 한 바 있었습니다. 민의식은 김백선을 부를 때 꼭 ‘사또’라고 하고, 저를 ‘소인’이라고 낮추었다니, 반상의식으로 쇠덮개 두른 양반 사대부들한테 비웃음 받은 까닭이었지요.

 

땡초는 혁명승려들의 모임이름이었다?(11장 미륵당취 일해보살 마하살, 본문 312-313쪽)

궁예弓裔부터 비롯하여 묘청妙淸 거쳐 신돈辛旽 까지 이르렀던 미륵사상은 주자 이데올로기로 안받침된 조선왕조가 세워지면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목숨줄을 이어가게 되니, ‘당취黨聚 ’가 그것입니다. 이제도 막되먹은 따디미(가짜 중)를 가리켜 ‘땡초’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당취 → 당추 → 땡추 → 땡초로 그 부르는 소리가 바뀌게 된 것이지요. 이제 바로 여기를 속속들이 꿈나라인 용화龍華 세상으로 만들자는 것이 미륵사상인 바, 권세자루 쥔 무리들에 붙어 금부처나 만드는 체제불교와는 뒤쪽으로, 중생들이 사는 모둠살이 틀거리를 새롭게 바꾸어 짜자는 혁명승려 동아리가 바로 ‘당취’였던 것이지요.

이 중생이 산문 山門 에 있던 70년대 가운데 때까지도 ‘미륵패’라는 불교 별파가 있었는데, 삼일수하 三日樹下 나그네로 동가식서가숙하는 객중들인 그들은 하나같이 사나운 눈매에 어기차 보이는 몸매들이었지요. 당취 본때 보이기라는 ‘금강산참회’니 ‘지리산 참회’니 하는 무서운 말들이 입에서 입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잣거리 힘부림얼개에 고분고분 미좇아가며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체제불교 채잡이들이나 권세자루 쥔 무리와 가멸진 악지주惡地主 들 동여다가 그 지은 바 죄업 크기에 따라 목만 내놓고 진흙 구덩이 속에 묻어 버려 시나브로 굳어가는 진흙에 조여 열반하게 만드는 것을 ‘금강산참회’라 하고, 손가락 발가락이나 아예 손발 을 끊어 내는 것을 ‘지리산참회’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정통 불교사라는 데서 한눈길도 주지 않는 이가 일해선사 서장옥인 바, 일해선사가 미륵당취였던 까닭입니다. 당취 저 혼자 힘만으로는 미륵세상을 만들어 낼 수 없으므로 그때 중생들한테 뜨 거운 손뼉을 받고 있던 동학이라는 그늘대 속으로 들어가 그들 꿈 을 이뤄내고자 하였고, 그런 무리들 대표가 일해미륵이었던 것이지요. 일해미륵에게는 홀로 선 당취 부대가 있었고, 그 본바닥은 지리산이었습니다.

 

체 게바라가 상품화된 시대에 이현상은 왜?(12장 남로당을 위한 변명, 본문 375-376쪽)

「쩐의 전쟁」이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조직폭력배보다 더 무섭다는 사채업자로 승승장구하는 주인공이 무슨 사람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체 게바라 얼굴이었던 것이다. 자본주의 총아인 사채업자가 입고 있는 공산주의 혁명가 얼굴이 담긴 티셔츠―. 무지막지한 자본주의자들은 마침내 공산주의 혁명가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지리산 골짜기 골짜기마다 있는 빨치산 비트며 그 루트들을 관광상품으로 만들 계획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같은 공산주의 혁명가라도 이현상李鉉相 선생 같은 이는 왜 ‘상품’으로 만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참 이상하다. 저 라틴아메리카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알아도 조선 혁명가 이현상은 모른다. 마오쩌뚱·호치민·티 토·카스트로, 그리고 김일성은 알아도 이현상은 모른다.

(중략)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역사라는 이름의 장강대하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니, 기억 또한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 이 그 기억을 적어두는 기록이다.

 

도올 김용옥은 노무현 대통령을 한때 여무현으로 부른 적이 있다?(13장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 본문 378-379쪽)

“노무현 대통령 취임 50일째 되던 날 김용옥 金容沃이 <문화일보> 기자 신분으로 인터뷰를 하러 가면서 노 대통령께 다음과 같은 친필을 전하는 장면을 TV로 보고 눈을 감고 싶었다. ‘노자’의 대가라라고 자처하는 자의 글씨로는 차마 볼 수 없이 광기가 도를 넘을 뿐만 아니라, ‘盧武鉉(노무현)’을 ‘慮武鉉(여무현)’으로 잘못 써서 주는 데도 노 대통령은 고맙다고 하니, 그 황당함도 유유상종이 아닐 수 없다.”

인제대학교 석좌 교수인 진태하 陳泰夏 씨가 《한글한자문화》 2007년 12월 호에 쓴 글 가운데 나오는 말입니다. “도올은 더 이상 교수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는 진교수 ‘분노감’은 이어지니,

“TV에서 노자 강의를 하면서 스스로를 자랑하여 “한자를 4, 5만 자 안다.”고 기염을 토하던 자가 ‘여로불변 慮盧不辨’ 곧 ‘慮’자와 ‘盧’자도 구별 못하니, 원숭이가 까불면 나무에서 떨어진다더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어떤 변명으로도 씻을 수 없다. 《강희자전 康熙字典 》에 실린 한자를 모두 알아 도 5만 자가 안 되는데, 무슨 수로 자기가 4, 5만 자를 안다고 허풍을 치는지 그간의 내용은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잘못 쓰이는 우리말, 미친 시대가 말까지 더럽히고 있다.(13장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 본문 378-379쪽)

잘못 쓰이거나 잘못 읽히고 있는 말들이 너무 많습니다. 너무 도 마땅하다는 듯이 쓰이고 읽히는 말들을 들어 보겠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편’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모든 것에 널리 퍼져 흔하거나 또는 그런 것, 모든 것에 두루 들어맞거나 또는 그런 것을 이르는 그 ‘보편적’ 말이지요.

‘보편普偏’이 아니라 ‘보변普徧’이라고 쓰고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들 ‘보편적으로’ 쓰고 읽으니,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쇠귀에 경 읽는 꼴이겠습니다만-

偏=치우칠 편, 편벽될 편, 간사할 편이니, 편견偏見, 편모 偏母, 편성 偏性, 편식 偏食, 편애 偏愛…… 따위 70여 가지 낱말들이 있습니다.

徧두루 변이니.

보변 普徧 주변 周徧 공변 公徧 변독徧讀, 변력 徧歷, 변조 徧照 같은 것들이 있고, 徧과 遍은 두루 쓰는 글자입니다.

시냇물이나 도랑물을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어 버리는 것을 가리켜 ‘복개’라고들 하는데, ‘부개’라고 읽고 써야 한다면 놀랄 사람들이 많겠지만, 참말입니다. ‘복개’가 아니라 ‘부개’가 맞습니다.

覆=엎어질 복, 넘어질 복, 배반할 복이니,

복분 覆盆 , 복선 覆船 , 복수 覆水 , 복주 覆舟 , 복철 覆轍 같이 다 ‘엎어진다’는 뜻입니다. ‘되풀이 한다’, ‘다시 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들에는, 부검 覆檢 , 부계 覆啓 , 부시 覆試 , 부심 覆審 , 부주 覆奏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덮을 부, 덮개 부, 감출 부, 널리 미칠 부로 읽는 경우로는, 覆蓋(부개=덮개·뚜껑), 覆載(부재)=하늘은 뭇 목숨들을 덮어 감싸 주고 땅은 또 뭇 목숨들을 실어 살려 준다는 천부지재 天覆地載의 준말 같은 것이 있습니다. ‘복개공사’가 아니라 ‘부개공사’인 것이지요.

‘매형妹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푸네기 사이 부름말에서 높음과 낮음, 곧 존비尊卑 차례가 뒤바뀌고 부름말 제 몸의 뭉뚱그린 생각마저 뚜렷하지 않은 대표적 쓰임말이지요.

형제兄弟 =남자 동기 同氣 사이에서 언니와 아우에 대한 부름말입니다.

자매姊妹 =여자 동기 사이에서 손위 누이와 손아래 누이에 대한 부름말입니다.

자형姊兄은 손위 누이 남편이고 매부妹夫는 손아래 누이 남편입니다. ‘매妹’는 손아래 여동기女同氣를 일컫는 글자이고, ‘형兄’ 은 손위 남동기男同氣를 일컫는 글자인데,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습니다. ‘매妹’자와 ‘형兄’을 합쳐서 ‘매형妹 ’이라는 부름말의 쓰임말을 만들어 ‘국어사전’에 버젓이 올리고 있으며, ‘매형妹兄’을 손위 누이 남편인 ‘자형姊兄’과 같은 뜻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말 사전을 엮는 이들이 진서에 대한 밑바탕 알음알이가 없음을 웅변하여 주는 것이지요.

잘못 불리어지고 있는 역사적 인물 이름은 변조스님 신돈 경우만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것이 ‘진훤대왕’과 ‘강한찬 장군’이겠습니다. 후백제를 일으킨 ‘진훤대왕’을 가리켜 모두들 ‘견훤’이라고 부르며 또 쓰고 있는데,

견甄 =질그릇 견, 질그릇 만들 견, 살필 견, 표할 견, 진陣 이름 견, 밝은 견, 면할 견, 새가 나를 견으로 읽지만, ‘질그릇 만드는 사람 진’으로 읽습니다. 사람 이름이나 성씨 경우에는 ‘진’으로 읽어 야 옳은 것이지요.

거란군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한 강감찬 장군이 있습니다. 모두들 그렇게 읽고 쓰지요. 그런데 강감찬 姜邯贊이 아니라 강한찬이 맞습니다.

감 邯 은 ‘조 趙 나라 서울 한’자입니다. 고장 이름 경우 ‘한’으로 소리 내고, 사람 이름 경우 ‘한’으로 소리내야 합니다.

 

 

머리말 - 역사를 생각하며

“삼절오장이여.”

저저금 제 투쟁경력을 뽐내는 자리에서였다. 이른바 문민정권 이 들어서면서 빵잽이를 머리로 한, 세상에서 말하는 바 ‘민주화 인사’들이 모여 한잔 꺾으며 씩둑깍둑하던 자리에서 이 중생이 한 말이었으니-

삼절三節은나라의 안녕과 인민대중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외적과 맞서다 대나무가 쪼개지듯 쪼개져 버린 선원仙原할아버지 와, 경술국치 때 자진自盡으로 왜제에 앙버틴 증조할아버지와, 왜제와 해방공간에서 항왜·항미 투쟁을 벌이다 꺾여진 아버지를 말하고, 오장五長은 모두가 똑고르게 행복한 삶을 살자던 인민의 나라에서 이지가지 위원장을 맡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큰삼촌과 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소설분과위 원장을 맡았던 이 중생을 말한다.

사사로운 집안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같지않게 무슨 조상뼉다귀 자랑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이 중생은 시방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그리고 그대로 우리 겨레 가운데서도 양심과 양식을 지켜내고자 애태우던 반넘어 인민대중들이 겪어야만 하였고 겪고 있는 근현대사의 맨얼굴로 된다.

(중략)

핏덩어리 앉혀놓고 글을 가르쳐 주시던 할아버지였다. 벼가 될 것이냐? 피가 될 것이냐? 책을 읽으면 논의 벼가 될 것이고, 책을 읽지 않으면 논의 피가 될 것이라고 하시었다. 그러면서 들려주던 것이 역사 이야기였으니, 그때 들었던 것을 바탕삼아 써보았던 것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이다. 할아버지는 당신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를 손자한테 다시 대물려 들려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또 당신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이야기었고, 이 중생 또한 손자를 볼 나이에 이르렀으니, 역사는 그렇게 오늘부터 저 천년 앞 왕건쿠데타로 꺾여진 궁예황제 꿈까지 줄밑걷어 올라가는 것이다.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 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패자의 남겨진 자식들은 말이다. 잘못된 역 사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마침내는 그리하여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던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써보았던 글들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가르침과 꾸짖음을 기다리며, 역사를 생각해 보는 마음 애잡짤하고녀. 관세으음보살.

2014년 8월 15일

비사란야非寺蘭若에서

김성동金聖東 손곧춤

 

 

 

작가 소개  김성동

1947년 음력 11월 8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8·15와 6·25사변을 거치면서 아버지와 큰삼촌과 외삼촌을 잃었고, 그때부터 이제까지 한뉘 동안 좌우 이데올로기 옥신각신에서 비롯된 아픔을 안고 산다. 조선왕조 끝 무렵 선비였던 할아버지한테서 천자문을 비롯하여 《소학》 《대학》 《맹자》까지 읽으며 조선과 동양의 역사와 풍습을 배웠다.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입산하였으니, 1965년 찔레꽃머리였다. 1976년 늦가을에 하산하였으니 만들지도 않았던 승적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1975년 〈주간종교〉종교소설 현상공모에 단편 「목탁조」가 당선되었는데, 이 소설이 ‘불교계를 비방하고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1978년 ‘한국문학신인상’에 중편 「만다라」가 당선되었고, 이듬해 고쳐 펴내어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그 뒤 빈틈없고 느긋하게 독판치는 조선문체로 한국 근현대사의 생채기와 구도(求道)의 나그네 길에서 존재의 샘자리를 파고드는 문제작들을 내보였다. 1998년 〈시와함께〉에 「중생」밖 11편을 선보이며 시 쓰기도 괴로워하고 있다.

창작집으로《피안의 새》 《오막살이집 한 채》 《붉은 단추》, 장편소설 《길》 《집》 《만다라》 《꿈》《국수國手》,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생명기행》 《김성동 천자문》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외로워야 한다》같은 것들이 있다.

 

 

 

차례

머리말 │ 역사를 생각하며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요?

❁화교가 되어 버린 대륙백제 사람들

❁마하 궁예보살 마하살

❁마하 요청보살 마하살

❁마하 신돈보살 마하살

❁대금제국 황제 이징옥 장군

❁문허진 성터에서

❁망나니, 철갈구리, 금송아지, 그리고 농투산이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 짚신과 워커

❁용문산 총댕이 김백선 장군

❁미륵당취 일해보살 마하살

❁밥통이 오그라붙어 열반한 최서해

❁남로당을 위한 변명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릅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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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일 :  10월 24일 
 서평 작성 마감일 : 책수령 후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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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예쁜글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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