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은 지성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용기의 부재에서 나온다 _미카엘 에르
고뇌하는 소크라테스이기보다
행복한 바보가 되어라
강자는 약용 씨앗을 씹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네 말뜻은, 네가 그렇게 똑똑해지려 애썼던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고,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는 말이군. 그래서 약간 멍청해지겠다는 거고. 똑똑해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기 때문에…….” _본문 88면 중에서
앙투안, 나이는 스물다섯, 시간 강사, 여러 분야의 학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으로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 그의 존재를 망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지성이자 명석함이다. 그는 사고를 멈추기로 결심한다. 제일 먼저 알코올 중독자 되기. 이는 체질을 타고나야만 성공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시도로 자살 강의를 들어보지만 죽음 또한 그의 영역이 아니었다. 마지막 시도가 바보 되기이다. 작가는 여기서 현대 삶의 폭력을 지적하고 지성 편중에 대한 어리석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절제된 언어로 마르탱 파주는 상상력과 유머 가득한 재미를 선사한다.
신랄하고 재기 넘치는 문체의 이 소설은 충격적인 진실과 참을 수 없는 익살스러움을 보여주는 매혹적인 작품이다. 문장 속에 드러나는 풍부한 지성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게는 곧 진정한 행복이다. <텔레라마>
이성적이 되고자 하는 우리 세상에 대한 이 풍자는 미묘한 문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작가의 풍자이기도 하다. <르 몽드 데 리브르>
주인공 앙투안의 바보 선언!
지성이 행복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앙투안처럼 명석하고 도덕적인 젊은이가 자유주의의 승리를 표방하는 이 잔인한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지성은 불행과 고독과 가난을 가져올 뿐이다. 현대의 캉디드라고 할 만한 이 경쾌한 소설 속에서 마르탱 파주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소비 사회와 뇌 절제 수술의 목적을 교묘하게 엮는 가운데 주인공 앙투안의 삶의 흔적을 따라간다. 앙투안은 학식이 깊을 뿐만 아니라 배려와 사려가 깊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이른바 지성인이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파악하기 위해 앙투안은 본능적으로 살지 못한다. 그런데 그는 ‘이성을 저주한다’고 선포하면서 스스로를 ‘가난한 독신이며 우울한 환자’라고 진단한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지성과 세심한 성격이 사람들과의 융화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인격이란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사치품”일 뿐이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저 자신으로 남아 있을 힘이 없습니다. 인격이라는 것을 갖고 싶은 욕망도 용기도 더 이상 없습니다. 저에게 인격이란 것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사치품입니다. 저는 평범한 유령이고 싶습니다. 저는 제 생각의 자유에, 제가 가지고 있는 온갖 지식에 그리고 그 가증스러운 양심에 진저리가 납니다!”_본문 31면 중에서)
그래서 앙투안은 스스로 바보가 되기로 결심한다. 더 정확히 말해 앙투안이 되고자 하는 ‘바보’란 따지고 질문하기보다는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책을 보기보다는 TV를 즐겨보며, 머리를 쓰기보다는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사람을 말한다. 앙투안은 어리석음의 제국에 감탄한다. 텔레비전과 가전제품들……. 작가는 여기에 현대 삶의 폭력에 대한 팸플릿 이상을 만든다. 그는 또한 판단을 내리는 지성 편중의 어리석음의 문제를 제기한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로 마르탱 파주는 우리에게 짧지만 상상력과 풍자 가득한 재미를 선사해준다. 이 책은 경쾌하면서도 아이러니하다. 요컨대 지적이라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삶, 운명을 유혹하는 데 있어서 몽상가 앙투안은 어리석음과 평범함, 그리고 단조로움에 확실히 빠져들 수 있을 것인가?
지식인에게는 이처럼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옳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식인은 피아니스트와도 같아요. 어떤 피아니스트는 자기 손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포커나 복서, 신경외과의, 화가까지도 당연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항은 대작들을 자주 접하고, 머리를 쓰고, 천재의 작품들을 읽는 것, 그런 활동이 지성인을 만든다고 보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러한 것들이 지성인이 될 위험성을 더 높여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프로이트나 플라톤을 읽은 사람 중에는 쿼크를 주무르는 사람, 사냥용 매와 황조롱이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얼간이가 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잠재적으로 정신에 많은 자극을 주고 정신을 풍요로운 분위기 속에 지내게 하면 지성은 자기가 자랄 수 있는 좋은 토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질병이 자라나는 방식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지성은 곧 질병이니까요. _본문 80~82면 중에서
지성은 곧 질병이다
바보가 되기로 결심하기 전에 앙투안은 사회와 융합하고 좀더 행복해지기 위해 두 가지 시도, 즉 알코올 중독자 되기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죽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완전한 자유가 아니라 살아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기에 이 또한 실패하고 만다. 마지막 시도가 바로 바보 되기. 그는 마침내 뇌 백질 절제 수술을 받기로 한다.
“……내 인생은 지옥이에요. 어리석고, 문제의식도 없고, 확신과 편견에 빠진 사람들, 완전한 바보들을 많이 알고 있는데, 그들은 행복합니다! 나는 궤양이 있을지도 몰라요. 벌써 흰머리가 몇 개씩 보이고……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럴 순 없다고요. 나의 경우를 세밀하게 연구한 후 내린 결론은, 나의 사회부적응증은 너무 많은 지식을 가진 데서 기인한다는 것이었죠. 나의 많은 지식들이 나를 조용히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길들이지 못했고, 그것은 나를 유령이 나오는, 어둡고 위험하고 염려되는, 고통받는 정신으로 가득 찬 외딴 시골의 작은 성으로 만들어버렸어요. 나 자신이 유령의 집이 되었다고요.” _본문 98~99면 중에서
그러나 그는 친구들의 권유로 의사의 상담을 받고 약의 힘을 빌려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지성을 포기하자 일자리도 잃는다. 파산 직전에 다행히 친구의 도움으로 증권중개인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떼돈을 벌고, 감각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부유한 젊은이의 상징인 스포츠카를 사들이고 고가의 브랜드 옷을 사고 최신형의 대형 전자제품들을 사들이고 헬스클럽 회원권을 산다. 당연히 신용카드 최우수고객이 되어 왕자 대접을 받는다. 역시 그의 말대로 “인생은 수표와 신용카드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지성을 포기한 그는 마침내 TV광고나 패션잡지에서 보여주는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것 또한 예상되는 위험이지. 하지만 바보가 되는 것은 지성의 굴레 아래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거든. 그렇게 사는 편이 더 행복한 건 확실해. 나는 어리석음의 의미를 지키려는 게 아니야. 하지만 미량원소처럼 그 속에 녹아 있는 유일한 원소들, 즉 행복을 간직하겠어. 일정한 거리, 공감함으로써 받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삶과 정신의 가벼움을 간직할 거야. 무사태평!”
_본문 117면 중에서
마르탱 파주(Martin Page)
파리의 거리를 사랑하는 낭만파 청년. 철학과 예술과 역사가 마술적으로 어우러진 언어로 이야기하는 파주는, 프랑스 문단이 주목하는 젊은 작가 중 한 명이다. 대중적일뿐만 아니라, 감각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글쓰기로 전 세계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마르탱 파주는 197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야간 경비원, 페스티벌 안전 요원, 기숙사 사감 등 이색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는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인류학, 음악을 전공했다. 취미도 다양해 우디 알렌의 영화를 좋아하고, 재즈를 즐겨 들으며, 요리하는 것을 즐긴다. 체홉과 도스토예프스키, 카슨 매컬러스, 로맹 가리, 제인 오스틴 등 그가 좋아하는 작가도 광범위하다. 파주의 작품으로는 『초콜릿 케이크와의 대화』, 『컬러보이』, 『나는 지진이다』, 『완벽한 하루』,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에 익숙하다』, 『비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내린다』 등이 있다.
옮긴이 용경식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디드로의 사실주의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6년 제1회 동서문학 번역문학상을 받았다. 옮긴 책으로 『연인』, 『배회, 그리고 여러 사건들』, 『일반수사학』, 『문 위에 놓아둔 열쇠』, 『나의 새, 나의 날개여』,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머스크』, 『그들의 세계는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가』, 『열여섯 더하기 하나』, 『D의 콤플렉스』, 『칼릴 지브란』, 『자기 앞의 생』,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에 익숙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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