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소리
겨울 포구에는 하늘이 나즈막하게 닫혀있어
갈매기가 높이 비상을 못했다.
방파제 끄트머리 바다로 향해 서있던
소녀의 두 눈은 젖어 있었을까?
물결치는 긴 머리카락 그 아래로
미세하게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로 돌아갔다는
한 남자의 넋을 달래는 방울 소리가 희미하게 바람에 묻어왔었다
.
은갈치떼
사하리 포구에 가면 지금도 그 가시내 방파제 끝에서
긴 머리 폴폴 날리고 있겠다.
아득한 세월의 저 편에서 나이가 정지된 가시내
바다로 나간 오라버니 돌아오지 않아
수평선 바라보면서 혼자 징징 울고 있겠다.
떠돌이 내게서 오라버닐 본 것일까?
그 밤 포구엔 나즈막하게 해조음이 깔리고
설운 우리들의 얘기 강물처럼 흘렀다.
바다엔 황홀한 집어등 불빛 은갈치 떼 몰려오는데
설움도 포개면 기쁨이 되는가 그 밤사 파도소리도 희열로 끓더라니
바람
가시내랑 살림을 차릴 걸 그랬다. 청운의 꿈은 애당초 내 것 아니기에
이름 없는 포구에서 갈치나 낚으며 살 걸 그랬다.
바람은 불어 오구 바람은 자꾸 날 꼬드기구...........
간고등어처럼 외로움에 푹 절어버린 가시내
그 단단한 소금기나 녹여주면서 그렁저렁 살 걸 그랬다.
바람은 불어 오구 바람은 자꾸 날 꼬드기구..........
동서남북 헤매어도 남는 건 바람뿐이던 걸. 가시내랑 살림이나 차릴 걸 그랬다.
모질고 모진 가시내 그렇게 목숨 버릴 줄이야......
내 가슴에 못을 박아버린, 시방도 상처에 피가 흐르는 평생의 형벌.
심연
간고등어처럼 외로움에 푹 절여진 가시내
그 애가 만들어 내는 우울의 심연
스멀스멀 안개로 피어오르다가 나를 가두어 버린다
허우적거리다 빠져 나오면 구슬픈 파도소리가 또 엄습해왔다
서서히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탈출에 대한 모의가 수면 아래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안개
자욱한 안개 속을 걸어보았는가?
그 막막함 속을 헤치고 나가 본 일 있는가?
이별은 이런 날이 제격 서로의 아픈 모습 보지 않고
쓸쓸한 뒷모습 보이지 않으니까
가시내를 찾아갔지
동구 밖까지 말없이 따라오는 가시내
그리고 안개 그리고 안개
그 속을 걸을 때는 말이 없어야 하는 법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가시내가 물었지만
안개는 아무런 대답도 않고 한 번쯤 포옹이 있었겠지
이젠 안개 속으로 사라질 순서
가시내가 한참 동안 서있었는지도 몰라
하지만 서부영화 속 떠돌이 사내처럼 나 역시 뒤돌아보지 않기로 했지
동백꽃
붉은 정열 온전히 간직한 채
툭!
떨어지는 마음 당신은 알까 몰라 어여쁜 모습만 기억하소서
파랑새
어느 날 바람이 지나가는 말로 전해주었다.
가시내는 파랑새가 되어 멀리 날아 갔노라고
남도의 동백꽃이 툭, 툭, 툭, 연달아 지고 있었다
그녀가 남긴 유물 중에는
그 아침 포구를 떠난 이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도 여럿 있었다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편지를 가시내와 함께 묻어주었다고 한다
나무
하얗게 말라가는 꽃대궁 그 겨울이 더 깊어가고 있었다.
파랑새가 되어 너는 날아 가버리고
빈가지 적막하여라
꿈속까지 쫓아오던 구슬픈 파도소리
물결치는 긴 머리카락 싸락싸락 눈은 내리고
눈 쌓인 비탈길을 도망치듯
앞만 보고 내달았다.
이제와 내가 시를 쓰며 통곡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
원컨대 하느님,
내가 커 가는 나무이게 하소서
작은 가지에 파랑새 한 마리 깃들어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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