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 (바보새) 10
이 책은 우리에게 생소한 ‘티베트 의학(Tibetan Medicine)‘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기존의 사암침법을 새롭게 모색하여 쉽고 효과적으로 진화시킨 ‘소문침법’과 즐겁고 신나는 ‘모두가 살고, 모두를 살린다’는 ‘올리브(Allive)요법’을 보급하고 있는 제법 학구적인 평범한 한의사의 MTB 원정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함께 원정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소개해본다. 나이순으로 소개하면 국내에서 사병, 하사관, 장교를 거쳐 프랑스 외인부대 출신 철인 김연수, 사비를 들여 혼자 국제대회에 참가해 ‘애틀란타 올림픽’ 출전권이란 기적을 가져온 MTB 1호 국가대표 권영학, Little 대근(LD)이란 닉네임을 가진 단단한 철인 서성준, 프로 야구 MVP를 뽑는 ‘한국체육기자협회’ 회장인 권오상, 훤칠한 키와 미모에 강인한 여철 이경주, komsta(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의 명장 한의사 김병수, 에베레스트 등 원정 대장을 수차 역임한 산악인 오인환이 함께 했다. 이들이 모여서 라싸에서 티베트의 고원을 지나서 히말라야를 넘어서 티베트의 국경 장무까지 MTB(산악자전거)로 횡단하고, 에베레스트 북쪽 베이스켐프를 방문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다양한 주제의 글이다. 그동안『민족의학신문』과 월간《사람과 산》등에 절찬리에 연재했던 내용을 보안하여 출간하게 되었다.
필자는 중국 전문가도 티베트 전문가도 아니다. 여기에 쓰는 글은 지극히 지엽적이며 사적인 생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와 가장 인접해 있고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실재로 잘 모르는 중국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중국이란 거대한 도가니 속에 들어가 있는 티베트와 히말라야를 주제로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을 세탁하여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으로 쓴 글이라는 사실을 밝혀둔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MTB(산악자전거)를 타고 티베트 고원과 중국을 들여다 본 자전적 인문학적 에세이(essay)이다.
저자 소개
김규만
만행(萬行)과 만행(蠻行)으로 얼룩진 현역 한의사이다. 대학원에서 티베트의학(Tibetan Medicine)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문인》에서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다수 매체에 연재와 기고를 하면서, 현재 국악방송(FM 99.1MHz) <우면골상사디야> “건강생활 웰빙세상”에 생방송으로 고정출연하고 있다. 굿모닝한의원 원장인 그는 독창적인 ‘소문침법’과 골반을 인체의 핵심으로 보고 모든 틀어진 관절을 ‘차고 치며 맞추는 폭력’을 통해서 진료에 임하고 있다.
<동국산악회> 회원으로 1988년 에귀디미디와 훼른리 리지, 1991년 동계에베레스트 등반. 1993년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창단하여 초대 단장으로 지구촌 국내외 오지 의료봉사(2010년 101차 기념 komsta네팔의료봉사에 다녀옴)에 수차 참석함. 1984년부터 Yacht와 Wind-surfing을 시작 2007년 700Yacht Club Opening day Races 1위, 최근 독도왕복 요트세일링 등. 마라톤ㆍ100km 울트라마라톤ㆍ산악울트라마라톤ㆍ트라이애슬론, 슈퍼맨ㆍ아이언맨 대회 등 수차 완주. 1986년 MTB와 인연을 맺은 이래 인도북부 라다크 MTB순환(스리나가르-레-마날리: 2회), 티베트 MTB 횡단(라싸-장무), 카라코람하이웨이 MTB종단, 타클라마칸사막 MTB 종단 등.
다양한 상황에서 지(知)와 행(行)에 힘쓰고 가혹하게 심신(心身)을 도야(陶冶)하고 있다는 저자의 행동은 만행(萬行)일까 만행(蠻行)일까?
저서는 『괴짜 한의사의 진짜 MTB이야기, 올댓 MTB』가 있다.
| 목차 |
머리말|
제1부 멀고 험한 티베트 가는 길
꿈은 이루어지는가?
안일한 삶에 필요한 소금과 소스
고난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
버리고 떠나기
일의일발,(一衣一鉢)의 자전거 세계일주
멀고 험한 티베트 가는 길
장거리는 복도쪽, 단거리는 창문쪽
정신의 고양(高揚) -꿈이 되어 나비처럼
아! 풍경(風景) -바람과 빛
입덧 같은 통과 의식 -고소 증세
티베트 저항의 근원 중국의 소수 민족
원정은 동중정!(動中靜)
원정을 위한 변명
중국 위정자들의 티베트관
제2부 잠들지 않는 티베트
너무 어설프면서 몹시 잔인한 홍위병
너무 커서 괴롭고 힘든 나라
잠들지 않는 티베트
큰 것만이 아름다운가?
작은 것도 아름답다.
패기와 박력이 넘치는 중국인들!
만만디인가 콰이콰이인가?
중국인은 만만디인가?
중국인은 콰이콰이인가?
위험한 국가주의, 과격한 중국인
제3부 돈키호테 라체에 입성하다!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 조국은 없다!
행복하고 낭만적인 바이캠핑(Bikcamping)!
수인(囚人)에서 탈출 -자유인으로
얄룽창포강의 서정적인 곡
바람처럼 자유롭게
물(氵)이 흘러가는 것(去)을 보고 법(法)을 배운다.
물처럼 담백하게, 꿀처럼 달콤하게
라체를 향하여 달린다!
돈키호테 라체에 입성하다!
낙엽이 발을 끄는 소리를
는가?
제4부 지고이지고이지고이!
장거리 여행을 꿈꾸는 라이더
지고이지고이지고이!
가는 것만이 아름답다!
오르는 것도 아름답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리워진다
!
바람 부는 날이면 언덕에 올라!
(La: 고개)
영혼을 선동하는 깃발 -룽따와 타르쵸
바람이 흔들리는가, 깃발이 흔들리는가?
잿빛하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제5부 영원을 건너는 만트라
고행은 때 묻은 영혼에 대한 정화의식이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영원을 건너는 만트라 -옴마니 반메훔
슬픈 서정시 -시애틀 추장의 편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변종 바이러스
단순 무식 지존무상 -단무지한 치료법
일의일발(一衣一鉢), 일장일랑(一杖 一囊)
내가 사랑한 올리브
오호! 부르다 죽을 이름이여, 절창(絶唱)이여
어찌하여 이리 얄궂은 역사란 말이냐
제6부 꿈꾸고 탐험하며 발견하라!
너무나 빨리 달구어지는 도가니
소리의 끝은 어디인가?
기억들이 역사가 될 때
꿈꾸고 탐험하며 발견하라!
벌레 먹은 서정과 잔인한 순정
아직 나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다.
티베트에서 7년
산을 오를 때는 오산(惡山), 내려갈 때는 요산(樂山)
수트라와 탄트라
노래는 시공을 초월한다.
제7부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라!
바람과 물이 흐르는 산고수장(山高水長)
부인은 혼자인데 남편은 여럿이라고?
마지막은 다운힐로
국경의 밤 -장무의 푸른 밤
쵸모랑마(에베레스트)와 베이스캠프 가는 길
마지막 야영과 베이스캠프 나들이
고행
마지막 남은 길은 더 아름답게 가라!
|부록|
나의 젊은 날을 지배하던 MTB
자전거 타기
안전한 MTB
라이딩을 위한 팁
| 본문 중에서 |
티베트 자전거 횡단! 이 꿈은 오래 전, 아주 오래 전부터 꾸었던 막연한 꿈이다. 그러나 말 그대로 막연한 꿈이었을 뿐이다.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같이 아득하고 지극히 피상적이며 비현실적인 꿈이었다. 다행이 그 꿈이 오래되면서 뿌리를 내리고 작은 싹이 자라게 되었다. 서두르지 않고 변화해가는 발효식품처럼 내 꿈도 조금씩 숙성되기 시작했다. 유목민(nomade) 속담에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티베트에 대한 나의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현실이 되었다. -15쪽
맹자(孟子)는 2000년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난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생어고난 사어안락 生於苦難 死於安樂)” 우리는 수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언어의 치열함에 전율을 느끼곤 한다. 괴로움과 어려움과 아픔을 극복하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의무이자 사명이며 으뜸의 패권(覇權)이기도 하다. 이렇게 극복해가면서 살아 있는 중생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과 어려움이 너무 커지면 사람은 일속자(一粟子: 조 한 알)로 변해버리고, 그 보다도 더 커지면 존엄성이 그 아래에 묻혀버린다.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괴로움과 어려움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난(苦難)은 자신을 성찰하게 하고 깨어 있게 해준다. 이렇게 나의 원정을 변명한다. -21쪽
고도가 높은 곳을 적응 기간 없이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경우는 조용히 일정한 순응 기간이 필요하다. 공기가 희박한 만큼 빛은 눈이 부셔서 온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 든다.
잠시 나른해지다 보면 영혼조차 말라붙게 할 정도로 메마른 바람이 피부를 스친다. 그 바람은 한(寒)과 조(燥)가 어우러져 있다. 조금의 움직임만으로도 숨 가쁘게 한다. 이것은 라싸를 처음방문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통과의식이다.
라싸에 도착한 첫날 한 대원이 점심 식사를 하고 머리가 빙빙 도는 현기증, 극심한 두통, 발열, 몸살, 메스꺼움 등을 호소한다. 침으로는 폐금사격(肺金瀉格: 건조한 기운을 사해줌)과 위목보격(胃木補格: 위가 잘 움직이게 봄기운을 보해줌)으로 처치하고 나니 구역질을 하면서 변기를 잡고 토하고 있다.
남자가 입덧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러나 그가 깊은 잠에 빠지자 조용하고 한가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숙취와 저산소가 문제였던 그 대원은 도착 당일 홍역을 치르고 나서 원정 기간 내내 단 한 번도 고소 증세를 호소하지 않았다. -47쪽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말은 경제학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F. 슈마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라이딩은 고상하지 못한 스포츠이다. 종일 근육은 내연 기관처럼 쉬지 않고 운동을 해야 하고, 폐
에서는 탁한 배기가스를 배출시키면서 가는 길은 그리 우아한 일은 아니다
.
폐는 양쪽에 3억 개의 폐포(허파꽈리: 0.2~0.06mm)로 구성되어 있다. 폐에
서 가스 교환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폐는 얇은 막으로 만들어져 적혈구에서 산소를 싣고 이산화탄소는
내리게 되어 있다. 이 산소를 흡수하여 사람의 생명은 유지되는 것이다. 폐는 우리 몸의 외부와 직접 접
촉하는 국경선(피부)을 관리한다. 이 국경선의 연장선이 허파꽈리이기도 하다. 허파꽈리는 외부의 기운
과 직접 접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폐는 외부의 보이지 않는 미진(微塵: 먼지, 세균, 바이러
스, 공기 전염병균 등)과 싸우고 퇴치해서 감염을 막고 우리 몸을 지켜내는 최전방 국경선이기도 하다.
-112쪽
나는 매년 자체적으로 단기간 고강도 원정 겸 의료봉사를 기획해서 떠난다. 대략 추석을 전후해서 10일에서 보름 정도의 기간이다. 참가자는 한의사도 있고 일반인도 있으며, MTB를 탄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필자는 이전에 인도 북부 리틀 티베트(Litter Tibet)로 불리는 라다크(Ladhak)를 1994년에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때는 스리나가르(Srinagar)에서 라다크 주도라고 할 수 있는 레(Leh)까지만 갔다. 그 당시 레와 마날리(Manali)구간이 카슈미르 분쟁으로 위험하다고 해서 포기를 했다. 그러다가 다시 1999년 MTB를 타고 방문했다. 그래서 다시 스리나가르- 레 - 마날리 구간을 너무나 어렵고 힘들게 완주했다. 라다크는 헬레나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로 한국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145쪽
티베트를 세계의 지붕이라고 한다. 바람이 몹시 불어 구름은 새털처럼 흩날려가고 잠시 세상은 온통 잿빛 하늘로 덥혀 있다. MTB는 그 음산한 공간을 뚫고 달리고 있다.
한때 그 을씨년스럽고 삭막하며 메마르고 거친 고원이 아름다움과 전율로 와 닿는 알 수 없는 정서적 야만(?)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적이 있다. 잿빛 하늘의 우울한 심정은 잠시도 잠들지 않는 바람의 노래와 희박한 공기 때문에 깊게 마셔지는 서늘한 한숨들은 틈을 찾아 무법자처럼 쳐들어오는 한기가 어찌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너무 절박한 환경은 음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자유의 공간에서 우수와 감상에 젖을 잠시의 사치조차 없다면 너무 불행한 일이다. -210~211쪽
참 거칠고 험한 하루의 여정이었다. 이곳 롱북곰파가 있는 곳의 고도가 5,050m라고 한다. 이 주위에 텐트사이트를 물색하여 도착하자 말자 텐트를 쳐야 했다.
밤공기가 비정해 보인다. 오늘은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라는 한가위”에 찬바람 속에서 바로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짐정리와 잘 준비를 했다. 밥을 먹고 나니 벌써 11시가 넘은 것 같다. 다들 숨 쉬는 것이 몹시나 힘든 모양이다.
오인환 선배도 오늘은 술 이야기가 없다. 다들 저녁을 먹자 바로 누울 준비를 하지만 몹시 답답해한다. 후일담을 들어보니 대부분 대원들이 5,000m에서 잠을 잔 경험이 전무(全無)하여 이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산소통(아쿠아렁) 한 개를 라싸의 여행사에서 빌려왔지만 쓰지 않았다. 그럭저럭 다 적응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322~323쪽
티베트의 천장(天葬)은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나 살다 떠나는 사람들이 온몸을 다 바쳐 다른 중생(독수리나 까마귀 등)에게 하는 마지막 최고의 보시이다.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어라” 하신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 죽은 자의 살과 비계가 다른 중생의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는 의식이다. 몸을 토막 내는 이 천장은 잔인해 보이지만 가장 아름답고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몸을 불태우는 화장은 마지막 순간에도 또 다른 무엇인가를 죽이고 소모하는 것이다. 매장은 몸을 썩게 하여 대지의 자양분(거름)이 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연코 직접 육식동물에게 몸을 주는 것보다 비경제적인 경제학이다. -329쪽
| 리뷰 |
만행(蠻行)의 한의사, ‘천상 시인’으로 돌아오다
그가 시인으로 데뷔한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그가 세 살짜리 아들을 무등에 태우고 북한산의 가파른 삿갓봉을 오르거나, 21세기 첫날 포경 수술 한 청년처럼 어기적어기적 찾아와 마라톤 완주를 했노라고 말하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뿐이 아니다. 산악자전거로 타클라마칸사막을 횡단하고 왔다는 어느 가을이 생각났고, 서귀포에서 벌어진 철인3종 경기에서의 무용담(?)을 들으며 ‘똥꼬 시려오는’ 오싹한 추억을 반추해냈다. 또 있다. 100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그에게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나는 그의 이런 행각을 ‘만행’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는 시인으로서보다는 모험가나 만능레포츠맨 쯤이 더 어울릴 것일 터.
어쨌든 ‘만행의 한의사’ 김규만은 시인이 됐고, 이번에 『지나간 길은 모두 그리워진다!』는 서정적인 책을 낸단다. 그의 ‘만행(蠻行)의 기록’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MTB(산악자전거)를 타고 티베트 속살을 들여다본 자전적 에세이’는 ‘천학비재(淺學非才)’ 하다는 그의 겸손과는 달리 ‘박학다식’과 ‘재기발랄’로 넘쳐난다. 거기에 시적 감수성은 또 어떻고……
“라싸는 희박한 공기와 밝은 빛으로 와 닿는다. 이곳은 공기가 희박하지만 빛은 오히려 더 강하게 내리 비춘다. 티베트 사람들은 찬 공기와 건조하고 척박한 이 땅을 ‘포’(Poeㆍ자연의 나라),‘ 캉첸’(Kangtsenㆍ눈 덮인 나라)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묵을 숙소에서는 넓은 개활지 가운데 유장하게 흘러가는 라싸강(키츄강)이 보이고 그 뒤에는 어쩌면 풀 한포기 하나 없는 높은 산이 비정하게 가로 막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새벽은 그 산을 넘어서 오고 강물도 그런 비정한 산 그림자를 헤치고 새벽을 태워서 온다. 라사의 아침은 그 산을 넘어서 그 강물을 타고 어렴풋이 밝아온다.”
강의 유장함과 산의 비정함을 대비시키며 신 새벽을 묘사하는 그에게서 시인 냄새를 흠뻑 맡았다. 산문에서 시적 언어를 이렇게 잘 조탁한 문장을 발견하기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다음과 같은 로맨티즘으로 무장한(!) 대목은 또 어떤가.
“순간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 냄새가 강렬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샹송 ‘고엽’은 여러 사람에 의해서 불려졌다. 그 중에 내 마음 속에서는 파트리샤 카스의 ‘고엽’이 흘러나왔다. 그 시적인 가사에는 도회적인 사랑과 낭만, 신파극 같은 이별과 우울이 묻어 있다. 샹송의 음률이 참 강렬하게 나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백양나무의 노랗게 물든 이파리들이 멜로디가 되어 길바닥에 우수수 떨어지곤 한다. 아, 가을이었지!”
‘고행(孤行)’이자 ‘고행(苦行)’이라는 라이딩 중에도 그는 ‘어린 시절 이발소 액자 속에 키치(kitsch)풍 그림과 푸슈킨의 「삶」이란 시’를 떠올리는가 하면 ‘삭막하고 음산한 공간을 뚫고’ 달리면서도 ‘고원의 아름다움과 전율’에 대해 얘기한다.
“잿빛 하늘의 우울, 잠시도 잠들지 않는 바람의 노래, 희박한 공기 때문에 깊게 마셔지는 서늘한 한숨, 틈을 찾아 무법자처럼 쳐들어오는 한기가 어찌 아름다움이란 말인가? 너무 절박한 환경은 음미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 자유의 공간에서 우수와 감상에 젖을 잠시의 사치조차 없다면 너무 불행한 일이다.”
히말라야의 ‘험한 산과 거친 황무지 같은 요철(凹凸)에 마음이 빨려들어 가는 매혹(魅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독자들로 하여금 모험가보다는 시인의 영혼을 읽히게 한다.
“서늘한 달빛은 피조물에 부딪혀 미세하게 반사되면서 윤곽(輪廓)을 따라 Aura(물체가 발하는 기운)가 날을 세운다. 표정이 가려진 어둠 속에는 조락(凋落)한 풀과 나무와 흙먼지에서 나는 마르고 매운 후각(嗅覺), 차갑고 거칠며 선듯하게 와 닿는 촉각이 모여서 페이소스(Pathos)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둠에 가려진 풍경(風景)은 깊어가고 검게 지워지고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명현(明顯)하게 드러나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가려지고 숨겨지며 잊어지고 지워져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상에는 드러나게 해야 할 것도 있지만, 덮어 둬야 할 것이 더 많은지 모르겠다.”
티베트 횡단 당시가 가을이었기에 그의 가을 찬가는 다양하게 변주돼 나타난다.
“티베트의 중앙 건조지역으로 다가갈수록 가을은 피부에 선듯선듯하게 와 닿는다. 그 피부로 된 자루 안에 우수, 비애가 담긴다. -(중략)- 서늘하고 메마른 공간을 채우는 바람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우리의 영혼을 쥐어짤 때 저절로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메마르고 서늘하며 단단하게 수렴될 때 충격이 가해지면 소리가 터져 나온다. 가을은 다른 계절보다 그런 조한(燥寒)한 기운이 많아서 수렴이 되었다가 유장한 소리가 되어 흘러나온다.”
히말라야의 가을바람에서 영혼의 소리를 듣는 시인은 “그래서 가을은 소리의 계절이 된다. 최고 절정(絶頂)으로 노래하다가 죽는 것을 ‘절창(絶唱)’이라고 한다. 가을의 결실(結實)에 대한 또 다른 얼굴인 숙살(肅殺)처럼 절창이라는 것은 슬프고도 아름답다.”고 탄식한다. 이런 그의 탄식에서 나는 이제 그는 ‘천상 시인’임을 발견한다.
“배우고 익히며 구하고 얻으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죽이고 비우며 버려야 한다. 죽이고 비우며 버려야 할 때 노래가 나오고 시(詩)도 나온다.”
고 말하는 그의 다음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오래된 서책의 먼지를 털어내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고, 틀어진 관절과 틀어 진 자세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질환을 다양한 방법으로 맞춰주어서 적극적이고 효과적이며 실용적인 ‘Mobile 한의학”을 재정립해보고 싶다는 한의사 김규만, “폼생폼사가 아니라 품생품사(品生品死)로 품위와 우아함을 지키며 살고 싶다”는 시인 김규만에게 그의 표현 방식을 빌린다.
글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어서 빨리 가자.
친구여! 그대가 따라주는 서늘한 소주 한잔이 사무치게 그립다.
- 이평식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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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악인들에게 티베트와 히말라야는 말만 들어도 반갑고 가슴 떨리는 곳이다. 이 글은 단순한 티베트 MTB 횡단기가 아닌 그의 사유와 감성의 깊이와 넓이를 새로이 가늠하게 한 인문학적 에세이이다. 登山은 궁극적으로 길 없는 길을 찾아 ‘下上下’를 잇는 Vertical 지향이라면, MTB는 사방으로 Horizontal을 지향해가는 것이다. 수직과 수평의 공간에서 그가 종횡무진하며 그린 도도(道圖:길과 그림)함은 기대할만하다.
-이인정 | 대한산악연맹회장, 아시아산악연맹회장
같은 길이의 거리를 걸어도 느끼는 바가 다름은 세상을 깨닫는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고도로의 여행은 늘 그에게 고통을 통해 삶의 존재 이유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었을까? 히말라야의 자전거 체험을 이토록 다양하고도 심오하게 써내려가는 것은 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직결된다. 거기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고,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기에 이 책이 다시 손에 잡히는 까닭이다.
-권오상 | 한국스포츠기자협회 회장, 2011서울국제스포츠기자총회조직위원회 위원장
라싸에서 장무까지 MTB를 타고 달린 이 여행기는 황량한 티베트 풍경과 함께했다. 해발 4,000m를 넘나드는 세계의 지붕, 5,000m 넘는 고개를 몇 개나 넘은 길이었다. 중국에 합병되어 자존심과 문화재와 자원을 모두 빼앗긴 티베트인들,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도전을 일삼아온 자신의 인생, 언뜻언뜻 떠오르는 노래, 삶과 죽음 등 모든 사유를 자전거의 은륜(銀輪)에 싣고 법륜(法輪:Mani wheel)처럼 돌려가며 가풀막을 오르고 내리막을 치달았다.
-박기성 | 전『사람과 산』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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