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기러기를 찍는 남자 (에세이스트) 10
기적을 노래한다! 슈퍼스타K
지난 가을 많은 이들이 한 TV 프로를 보고 유쾌한 성취감에 대리만족했다.
그 역전의 묘미가 여기 또 있다.
질곡의 삶을 해학으로 풀어내는 이 작가의 입담과 재치,
시원한 정자 같은 수필 세계에 그대를 초대한다.
그는 평범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전설이다.
정정자의 수필집
∠작품 평
우리 사회에선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인물이 예쁘다면 세상을 사는 데 훨씬 용이하다. 일종의 프리미엄을 얻고 뛰는 식이다. 역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출발선상에서부터 여러 장애를 안고 뛰는 폭이다. 그녀를 볼 때 꼭 그런 것 같았다. 겨우 시골 여고 출신이, 그건 밖으로 드러나는 것 아니니까 덮어두기로 하고, 그러면 외모는 얼마나 세련되었는가? 결코 세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수필을 쓰겠다고 뛰어들었으니, 이런 무모함이 있나. 그런데 용감하게 뛰어들었고, 드디어 뛰어난 수필집을 냈다.
요즘처럼 잘난 사람이 많은 세상에선 잘난 구석이라고는 쉽게 찾기 힘든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가 안겨 주는 기쁨이다. 역경을 딛고 끝내는 성공하는 명랑만화를 보는 것 같다. 강이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면 강의 풍경이 얼마나 지루할까. 굽이굽이 굴곡이 졌기에 강은 아름답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엔 터닝 포인트가 굽이굽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한 평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녀는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 옳은 선택을 했다. 사실은 최악의 선택을 했었다. 그 최악의 상황마저 견디고 견디는 것이다. 현실 상황이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게 마련이다. 예민한 감촉으로 변화의 기미를 놓치지 않는 것이 관건이다. 만약 당신이 잘못 선택해서 최고의 악수惡手를 두었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라. 인내하라.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참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아무리 암담한 상황에서도 탈출의 수가 보인다. 결정적인 순간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듯 빠르고 과감하고 단호하게 탈출을 결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실패는 과정에 도사리고 있는 역경이 되고 결국 성공만이 결과로 남게 된다. 그녀가 그걸 해냈다.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 평론가 김종완
∠작품 내용 중에서
달룡씨네 논두렁엔 개망초만 하얗게 피었다. 이 봄이 오기 얼마 전 그는 저승객이 되었다. 작년에 그는 남의 논두렁까지 콩을 심고 이른 새벽부터 들판에 나와 콩씨를 지켰다.
“까치와 비둘기 때문에 씨가 바로 서야 말이지. 이놈의 짐승이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알고 콩씨를 빼 먹는가 말이야.”
달룡씨는 빈 자리마다 찾아다니며 콩씨를 심고 또 심었다. 가을이 오고 콩꼬투리가 누렇게 익어갈 즈음, 달룡씨는 또 들판에 나와 콩을 지켜야 했다. 안개가 자욱이 깔린 들판에 그는 말뚝처럼 서서 말했다.
“어느 놈이든 내 콩을 따가는 놈을 잡기만 하면 그냥 영창에 집어넣어 콩밥을 싫도록 먹여 주겠어.”
달룡씨는 콩을 다 거둘 때까지 들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올해부터는 저승 어느 구석에다가 콩을 심으려나. 늘상 만나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들판도 신도시에 밀려 자꾸 졸아드는 것 같다.
— 「들길을 걸으며」부분
기골이 장대한 뚱딴지는 술을 너무 좋아해서 팔이 아프도록 술을 마셔보는 것이 소원이었으며, ‘까댐이’는 작은 체구에 무거운 볏가마를 지고 내리자니 힘에 겨워 입에 밴 소리가 까댐이었다. 항상 말이 없는 ‘흐지부지’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 간다하여 지어준 별명이며, 그 중 제일 젊고 약삭빠른 이는 춘샘이었다. 이들은 그런대로 어울려 일을 다녔고 몇 해 안 가서 거적을 걷어내고 흙벽돌을 찍어 그 자리에 오두막 초가집을 지었다. 새마을 운동이 일기 시작하자 초가지붕에는 슬레이트가 씌워졌으며 그들의 생활도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홍수가 나던 해였다. 사람들은 홍두평 벌판을 가로 질러 너도 나도 한강으로 물 구경을 갔었다. 마포나루에서 떠내려오는 목재들이 산같이 밀려들고 있었다. 땔감이 궁한 그 시대에는 누구든 욕심나는 일이었다. 순간 흐지부지는 강물로 뛰어들었다. 목재 하나를 부여잡고 헤엄을 쳐 나오려 용을 써 보았지만 그의 몸은 점점 멀리 떠내려갔다. 사람들은 흐지부지 살다가 떠날 때도 흐지부지 가버린 그를 가엾어 했다.
— 「갱변가 사람들」부분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도 길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수시로 할머니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나는 무척 조심을 했는데도 올케는 내가 달거리를 거르는 것을 할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혹여 병원에 가서 지우지나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계셨다. 나는 나대로 산부인과 간호사 친구를 만나 배 속의 것을 없애버릴 궁리만 했다. 결단을 내린 것은 남편이었다. 그는 시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 날을 새로 잡고 일을 진행시켰다. 다음해 삼월 이십 일 봄빛이 찬란히 피어나던 날, 나는 드디어 면사포를 쓰고 오백여 하객이 모인 예식장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그후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네 사주팔자가 가마를 두 번 탈 팔자라고 해서 그렇게 된 거다, 한 서방에게 두 번 아니라 열 번이면 어떠냐.”
그리고는 내 머리를 끌어다가 남들에게 가마 두 개 있는 것을 확인시키곤 했다.
— 「초례」부분
∠차례
여는 글
1부
들길을 걸으며
갱변가 사람들
당숙
강 노인의 기도
서울댁
술이 물이외다
이 주사
조 영감
종손(宗孫)
2부
넋대*
초례
키니네 다섯 알
내집 짓기
아버지의 눈물
내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둘
미움일랑 다 버리고
아들
울례
큰어머니의 곰방대
형부를 그리며
기러기를 찍는 남자
다랭이마을
3부
죽은 자와 산 자
놀면 뭐 하냐
동창들
삼보 이야기
앙숙
4부
늙은 쥐
살아, 내 살아
옛집에서
이름자 타령
지난날의 짧은 이야기 셋
화장
5부
눈 오는 날에
톤레샵 호숫가의 사람들
네팔 여행기
천 원을 외치던 소리
보길도 기행
정(情)에 관하여
봄여름가을 그리고 어느 겨울 날
정인(情人)
철없는 아이
지은이 정정자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 김포 관내 농협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퇴직해서야 본격적으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2003년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현재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서정과 서사 회원, 그레이스 문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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