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겨울 숲에서 - 안도현
하동댁
2021. 1. 28. 12:56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밭 속에다
띠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들어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사람이 되어 눈을 뒤집어쓰고
서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