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 허연

하동댁 2020. 8. 26. 13:18

불빛이 누구를  위해 타고 있다는 설은 철없는 음유시인들의 장난이다

불빛은 그저 자기가 타고 있을 뿐이다

불빛이 내것이었던 적이 있는가

내가 불빛이었던 적이 있는가

 

가끔씩 누군가 니 대신 죽지 않을  것이라는 걸

내 대신 지하도를 건너지도 않고

대학병원 복도를 서성이지디도 않고

잡지를 뒤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사실이 겨울날 새벽보다도 시원한 순간이 있다

직립 이후 중력과 싸워온 나에게 남겨진 고독이라는 거

그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 있다

 

살을 섞었다는 말처럼 어리숙한 거짓말은 없다

그건 섞이지 않는다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밖에 있던 자다

다시 밖으로  나갈자다

세찬 빗줄기가 무엇하나 비켜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남겨놓은 것을 본적이 있는가

그 비가 나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나를 용서한 적이 있었던가

 

숨막히게 아름다운 세상엔 늘 나만 있어서 이토록  아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