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황새 냉이 - 양현근

하동댁 2020. 3. 5. 22:04





재래시장 입구에 봄이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개다리 소반에 노지에서 갓 따온

황새냉이와 박구재미, 달래 등이 한데 뒤섞여도

자식 알아보듯 냉이만 골라내어 다듬고 있는 할머니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자릿세를 받으러 온 봄볕만  몇 차레 눈길을 줍니다

먼데서 완행열차를 타고 왔다는 할머니가

시금치와  상추를 그 옆에 풀어놓습니다

좌판에 나란히 앉아 긴 생 돌아온

골목길의 오랜 적막을 묻습니다

그사이를 비짐고

누이와, 황새냉이를 한 바구니씩 캐던

어린 시절이 끼어듭니다

손수건에 싸온 밥은 내게 내밀고

풋것을 캐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누이의

푸른 입술도 데려오는 봄은 때론 눈물입니다

할머니가 아직은 덜 익은 햇살을 뚝, 따서

냉이가 담긴 비닐봉지 안에 덤으로 얹어줍니다

비닐봉지를 열자

매운 바닥을 견뎌 낸

황새냉이의 향기

소쩍새와  쑥국새 울음소리에 기대어 서쪽 하늘을

털어내던 푸른 누이가

코끝으로 스며듭니다

머지않아 할머니를 태우고 온  완행열차가

누이를 데리고 먼 마을로 떠나면

좌판에 깔아두었던  하루가 왈칵 쏟아져

내리겠지요


냉이국에 올라오는  오늘 저녁은

누이의 얼굴  같은 달이 핑계 좋게 뜰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