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스크랩] 봄꽃들의 향연

하동댁 2018. 4. 23. 08:57

 

배꽃 - 하두자


바다 가득 밀려오는

산호초 붉은 바람에

온 몸의 피돌기 돌아 연초록 잎이 돋는다

순간의 빛살과 그림자 한 몸이 되어

바람끝 따라 한 시절 터지고 싶은 욕망

내 안에 쌓인 순백의 향내

그 열망에 나는 떨고 있다

빗장 굳게 닫은 창문들 열어제끼고

방을 뛰쳐나간 꽃망울들이

하얗게 하얗게 폭죽 터뜨리며 무너진다

세상이 흔들릴 적마다

나는 황홀하다

    

 

 

바람꽃 - 김정호(美石)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어깨위로 흘러내리면

또 쓸쓸함에 젖어야 하나

메마른 안개비가 들판을 적시고

꽃잎이 말없이 질 때

세월은 서둘러 간다지만

아직도 부르지 못한 내 노래

무거운 침묵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끌고 있다

상처 입은 야윈 바람

나직이 휘파람을 불고 있다

바람꽃 한 송이 내 사랑

작은 꽃잎이 하늘을 가득 이고

그리움이 나지막하게 흘러내리면

가슴 앓은 환영 하나

그것은

잃어버린 희미한 내 그림자

   

 

 

모과꽃 - 김승기

 

천연두 마마를 앓듯이

겨울을 살아낸 삶

힘 넘치게

푸른 잎 틔우다

새잎마다 비늘 번득이면서

연홍색 꽃을 피우면

내 팔뚝에도 불끈 힘줄이 서다

맑은 영혼으로

햇살마다 실어 올리는 꽃향

덩치 큰 곰보의 얼굴이

오히려 예쁘다

여름 내내 정성으로 키우는 열매

그 달디 단 향이

가을을 듬뿍 적시면

하늘이 깜짝 놀라다

 

누가 너를 못난이라 하느냐

사람의 눈으로 자연을 들여다본다는 것

아주 조심스런 일이야

   

 

 

자목련의 봄 - 未松 오보영

 

자칫 잃을 뻔 했던 봄

 

뜻하지 않은 찬 기운에

미쳐 피워보지도 못할 수 있었던

 

꽃망울

 

활짝 터뜨릴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님 기대하던 소박한 모습

원래 그대로

 

다 보여줄 수 있으니

 

얼마나 큰 기쁨인지요

   

 

 

진달래 - 양전형


다시는 나를 부르지 마라

내 맘 속 천 리 먼 길

사랑의 티가 박힌 늑간살을 지나

어질증 폭발처럼 흐드러지게

알몸 도발을 다시 해야 하느니

나를 부르지 마라 피지 않겠다

어디 한 번

눈물 괴이도록 열매 하나쯤

벅차게 달려준 적 있었는가

헤픈 늦삼월

고요만 무성한 허기진 숲속

제발 내 이름 부르지 말라니까

   

 

 

박태기나무 꽃 - 임두고

 

늦은 사월

사방이 수초처럼 젖어 있어

까닭모를 내 그리움

그 속 깊은 곳까지 젖고 있다.

 

문득 젖은 알몸으로 다가서는

뜰 앞의 박태기

박태기나무 꽃들은

그저껜가 그그저껜가

계단 위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던

그녀의 치마폭처럼

자줏빛

지울 수 없는 자줏빛이다.

 

박태기

박태기나무 꽃이여

하필이면 네 꽃이름이 박태기인가

아무렇게나 불리워진

네 꽃이름으로 인하여

나는 지금 아무렇게나 나뒹굴던

어린 시절

마른 수수깡 팔랑개비처럼 가벼워진다.

 

그리움은 젖을수록 가벼운 날개를 다는가

내 가슴은 지금

그 모순을 접어 만든 팔랑개비

누가 작은 바람끼만 건네도

천만 번 회오리치며 돌아버릴 것 같은

미쳐버릴 것 같은

가벼움 속으로……

 

나는 지금 그렇게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있다.

 

박태기

박태기나무 꽃이여

네 꽃이 핀 것은

이제 더이상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하여 네가 지금 비에 젖고 있음은 더더욱

너만의 문제가 아니다.

 

네 꽃은 이제

까닭모를 그리움의 배경 속에

젖을 대로 젖어

타인의 가슴 속 깊이 아무렇게나 번지고 싶은

한 사내의

자줏빛 진한 그리움의 빛깔일 뿐

 

진실로

진실로

젖어도 지워지지 않는

한 사내의 무참한 그리움의 빛깔일 뿐






♬ Life's Storybook Cover (인생 이야기책 표지) - Isla Grant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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