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최갑수 시인의 11 월

하동댁 2017. 11. 18. 19:26




저물 무렵 마루에 걸터앉아

오래전 읽다 놓아두었던 시집을

소리내어 읽어본다


11월의 짧은 햇빛은

뭉툭하게 닮은 시집 모서리

그리운 것들

외로운 것들, 그리고 그 밖의

소리나지 않는 것들의 주변에서만 

잠시 어룸거리다 사라지고 

여리고 순진한 

사과 속 같은 11월의 그 햇빛들이 

머물렀던 자리  11 월의 바람은  또 불어와 

시 몇 편을 슬렁슬렁 읽어내리고는 

슬그머니 뒤돌아서 간다 

그동안의 나는 

누군가가 덜어두었던 오래된 시집 

바람도 읽다 만  

사랑에 관한 그렇고 그런

서너 줄 시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길을 걷다 무심코 주워보는 낙엽처럼

삶에 관한 기타 등등이 아니었을까

시집을 덮고  고개를 들면

더이상 그리워할 일도

사랑할 일도 한 점 남아 있지 않은

담담하기만 한 11월의  하늘

시집 갈피 사이

갸웃이 얼굴을 내민 단풍잎 한 장이

오랜만에 만난 첫사랑처럼

낯설고 겸연쩍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