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가포에서 보낸 며칠 - 최갑수

하동댁 2017. 10. 25. 22:30

 

 


 

 

 

 

한동안 가포에 있는 낡은 집에 가 있었다

늙은  내외만이 한 쌍의 말간 사기 그릇처럼

바람에 씻기어 살아가고 있는

바닷가 외딴집

바다 소리와 함께  그럭 저럭

할 일 없이

보고싶은 이 없이 참을 만했던 며칠

저녁이면 바람이

창문에 걸린 유리구슬  주렴 사이로

빨강 노랑 초록의 노을 몇 줌을

슬며시 뿌려주고 가기도 했다

손톱만한 내 작은 방에는 구름처럼 가벼운

추억 몇 편이 일렁이며 떠 있기도 했다

 

그집에 머물던 며칠 동안

내 가슴속  아슴하게  오색 물무늬가 지던

그러한 며칠 동안

나는 사랑이라든가

사랑이 주는 괴로움이라든가 하는

마음의 허둥댐에 대하여 평온했고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그런 허둥댐에 대하여 평온했고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그런 허둥댐의 덧없음에 대하여

다 돌아간 저녁의 해변처럼 심심해지면.

평상에 모로 누워 아슴아슴 귀를 팠다

 

오랫동안 곰곰이 내 지나온 세월과

살아갈 세월을 생각했다

가끔. 아주 가끔

아픈듯이 별들이 반짝였고 그때마다

감나무 잎사귀들은 바다와 함께 적막했다.

 

 

가포에서 보낸 며칠  -  최갑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