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김태정 시인의 시 모음

하동댁 2017. 4. 5. 06:29

물푸레나무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게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 2004)]

 
구월입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이면 시인의 ‘가을 드들강’이 읽고 싶어지고 읽다보니 이 가을, 구월에 4주기가 되는 시인의 생애가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물푸레나무처럼 스며듭니다.
어느 시인은 가장 죄를 덜 지은 시인을 꼽는다면 ‘김태정’일 거라고 했지요.
녹록치 않은 신산한 삶에서도 아무런 죄 짓지 않고 쉰이 되기도 전에 달랑 시집 한 권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시인의
시편들이 잔잔하게, 찬찬히 가을 저녁 간장색 어둠으로 몸을 담가줍니다.
오래~ 먹먹합니다.
달랑 시집 한 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의 집에 시인의 온 생애가 담겨있군요.
땅 끝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 가고 싶은 구월의 저녁입니다.
혹 그곳에 가시거든 거기,
있는 듯 없는 듯 나무 곁에 있을 시인께 가볍게 목례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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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네 뼈로 내 뼈를 세우리
네 살로 내 살을 보태리
네 몸을 이루는 바다로
삶의 부력을 완성하리
은빛 비늘의 눈부심으로
무디어진 내 눈물을 벼리리
어느날 문득 육지를 보아버린
네 그리움으로
메마른 서정을 적시리

그리하여 어느 궁핍한 저녁
한소끔 들끓어오르는 국냄비
생의 한때 격정이 지나
꽃잎처럼 여려지는 그 살과 뼈는
고즈넉한 비린내로 한세상이 가득하여,

두 손 모아 네 몸엣것을 받으리
뼈라고 할 것도 없는 그 뼈와
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 살과
차마 내지르지 못하여 삼켜버린 비명까지도

<76쪽>


순수와 무욕의 성정을 담다
개츠비ㅣ 2015-03-15 ㅣ 공감(2) ㅣ 댓글 (0)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난은 무능 아니면 동정의 대상이다. 모두들 무능과 동정이 따르는 가난을 기피한다. 검박함을 미덕으로 알아야할 수도자들까지도 고급 승용차를 타고 좋은 옷과 음식을 갈망한다.  가난은 이래저래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자본주의 세계의 기피 대상 1호다. 하여 사람들은 밥이 되는 일에 모든 시간을 쏟기 마련이다. 우리가 쳇바퀴 도는 일상을 신줏단지 모시듯 살아가는 것도 가난과 벗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영혼이 가난해도 신경쓰지 않지만,  물질적 빈곤 만큼은 벗어나려 한다.   그게 세상의 통념이다.


그런데, 이 상식에 반기를 든 사람이 있었다.  그는 김태정 시인이다.  서울 토박이였고 노동자였고 좀더 세련되게 표현하자면 민중서정시인이었다. 생전 김남주 시인이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로 있을 때 그 곁에서 간사를 맡았다. 13년 동안 시를 썼고 그 시를 모아 2004년에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던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를 펴냈다.  그 즈음 시인은 서울 생활을 접었다. 그 후, 그는 전남 해남의 땅끝에 있는 미황사란 사찰에 둥지를 틀고 7년 남짓을 살다 암과 투병 끝에 생을 마쳤다.


시인보다 시인의 삶이 더 궁금해졌다.  그런데, 김태정 시인의 서울 살이와 마흔 여덟 생에 대한 흔적이 별로 없었다. 어떻게 검색어를 넣어도, 그 이상 정보가 없는 것은 난감한 일이었다. 이것은 궁금증을 더 증폭시키는 것인데 사실 바보같은 일이 아닌가. 시집을 첫 장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면서 내가 가까운 지름길을 놔두고 쓸데없는 짓을 했단 생각이 들었다. 시 속에서 김태정의 마음을 읽는다.  가난, 글쓰기, 외로움, 고된 노동, 돈이 되지 않는 시, 서울살이의 실망감, 상실감, 맑게 세상을 살피는 서정성, 검박함, 시에 대한 집착. 자연에서 살고 싶은 바람.


첫 페이지에 등장한 `호마이카상'이란 시는 그녀가 시로써 남긴 자서전이다. 간소한 밥상을 차릴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앉은뱅이 책상이었던 시인의 호마이카상은 시인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시인은 이제 호마이카상을 갈아치우고 싶어한다. 그것은 "네가 낡아서가 아니고 싫증 나서도 아니다.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시인은 같은 호마이카상을 썼다. 그곳에서 그녀는 밥을 차려 먹고 시를 썼다. 그 상 앞에 앉으면 호마이카상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조차 알 만큼 노련해졌다. 내 생각을 다 읽는 그것 앞에서 "거짓말도 할 수 없고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도 네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불편해졌다. 이 검박함과 겸허함이 그녀의 삶을 받치는 주춧돌 아니었을까.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네 앞에서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나의 현재가 문득 초라해졌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
죽도 밥도 아닌 세월이 문득 쓸쓸해졌다
이 초라함이,
이 쓸쓸함이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너를 버려야 할까보다
그래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호마이카상> 일부, 김태정


검박함은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소품들로 형상화 된다. 2000년대에 여전히 286 컴퓨터를 애지중지하는 그는 그것을 `나의 아나키스트'로 명명한다. 이 컴퓨터는 그가 "1996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색인 교정 아르바이트 일당 4만원으로 장만한 재산목록 1호"였다. 그 이후, 그 철지난 컴퓨터는 글을 쓰는 시인의 밥줄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286 컴퓨터를 여전히 쓰는 것은 "일당 4만원의 땀 밴 추억 때문도 아니고 재활용에 대한 알뜰한 집착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감시당하고 핍박받았던 80년대 정치상황에 대한 은유로 이어진다. 그의 시가 서정과 민중성으로 결합되는 지점이 바로 이런 곳들이다.


"어떤 사상이든 어떤 정견이든 어떤 욕설이든 내뱉어도
발설하지 않는 나의 286은 외계와의 교신을 버린 아나키스트라서
흔적을 사냥하는 광견의 시대 팔공년대를 통과하면서
천기누설공포증이라 해도 좋을 풍토병을 다만
아웃사이더였을 뿐인 나까지 덩달아 앓았으니"

<나의 아나키스트> 일부


궁핍과 가난에 대한 그녀의 태도는 긍정과 부정을 오고간다. 그것은 때로 불편함이자 때로 조력자가 되곤 한다. `궁핍이 나로 하여'라는 시에서 김태정은 "몇주째 견뎌오던 보릿고개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밥이 되고 공과금이 되고 월세가 될 글을 쓴다"고 적고 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글발이 서지 않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하여 시인은 " 이 핑계 저 핑계로 오래도록 원고뭉치를 묵혀 두고 말았다."  그 원고뭉치의 먼지를 털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궁핍이었으니 그것은 나를 죽게 하면서 동시에 살리는 것 아니겠느냐고, 시인은 가난의 역설을 표현하는 것이다.


" 이것도 보릿고개 덕이라면 덕이겠다
궁핍이 나로 하여 글을 쓰게 하니
궁핍이 글로 하여 나를 살게 하니
가난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조력자인가 "

<궁핍이 나로 하여> 일부


시인은 2003년 문인 동료와 해남 미황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무슨 연유에서였을까.  그는 2004년 토박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한반도의 끝자락 사찰 미황사로 거처를 옮긴다. 그의 시집에는 미황사와 해남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제법 담겨 있다.
달마산의 솟아난 바윗돌들이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사철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미황사에는 관광객 뿐만 아니라 문인들의 발걸음이 잦다. 한 때, 김태정 시인과 일했던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있는 곳도 해남 땅이다.  김태정 시인의 작품집 안에도 `미황사'란 제목을 단 시 한 편이 등장한다.
이 시 안에서 엿보이는 정서는 상실감과 결핍이지만, 미황사를 통해 종교와 자연에서 오는 잔잔한 치유의 에너지 또한 흘러 넘친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사랑도 나를 가득하게 하지 못하여
고통과 결핍으로 충만하던 때
나는 쫓기듯 땅끝 작은 절에 짐을 부렸습니다

세심당 마루 끝 방문을 열면
그 안에 가득하던 나무기둥 냄새
창호지 냄새, 다 타버린 향 냄새
흙벽에 기댄 몸을 살붙이처럼
아랫배 깊숙이 그 냄새들을 보듬었습니다

열이레 달이 힘겹게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고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아물지 못한 상실감으로 한 시절을
오래, 휘청였습니다

……색즉시고옹공즉시새액수사앙행식역부우여시이사리자아아시이제법공상불생불며얼……불생불멸……불생불멸……불생불멸……

꽃살문 너머
반야심경이 물결처럼 출렁이면
나는 언제나 이 대목에서 목이 메곤 하였는데

그리운 이의 한 생애가
잠시 내 손등에 앉았다가 포르르,
새처럼 날아간 거라고
땅끝 바다 시린 파도가 잠시
가슴을 철썩이다 가버린 거라고……
스님의 목소리는 어쩐지
발밑에 바스라지는 낙엽처럼 자꾸만
자꾸만 서걱이는 것이었는데

차마 다 터뜨리지 못한 울음처럼
늙은 달이 온몸을 밀어올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필생의 호흡이 빛이 되어
대웅전 주춧돌이 환해지는 밤
오리, 다람쥐가 돌 속에서 합장하고
게와 물고기가 땅끝 파도를 부르는
생의 한때가 잠시 슬픈 듯 즐거웠습니다
열반을 기다리는 달이여
그의 필생의 울음이 빛이 되어
미황사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홀로 충만했습니다 "

-미황사 <전문>


생전 시집 한 권을 남겨놓고 2011년 생을 마감한 김태정은 주목받지 못한 시인이었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출세하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무려 13년동안 쓴 시를 엮어 겨우 시집 한 권을 남긴 그였다.   그는 여전히 시인들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를 아는 시인들의 전언을 통해 우린 김태정을 다시 살펴보게 된다.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 시인은 생전 그를 일컬어 " 이 땅에 태어나 가장 죄를 적게 짓고 사는 시인이 있다면 달마산에 깃들여 사는 김태정 시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시인의 사후, 그를 알고 지냈던 시인 김사인은 `김태정'이란 시 한 편으로 그를 기렸다. 동료 시인의 눈에 비친 김태정의 마흔 여덟 짧은 생이 비로소 손에 잡힐 듯 생생히 전해온다.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이 처량한 그림자만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니 던
소설공부 다니는 구로동 노동자 공아무개 젖먹이를 도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더라는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고나 하는 소린지 되려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솜씨도 음식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

-김사인의 시 <김태정> 中


나를 미황사로 이끈 이는 김태정 시인이었다.  그것이 알길없는 시집 한 권의 마력이겠다. 그곳에서 기억속 연인을 그리듯 나는 그 시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전날 늦은 밤까지 그녀의 시를 반복해 읽었고, 시집의 말미에 담긴 동료 시인의 비평도 꼼꼼히 보았다. 그러나, 나는 김태정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그날 미황사에서 찾으려 했지만 결국 찾지 못한 것은 그가 사랑하고 회피하려 하지 않았던 `자발적 가난'과 `무욕' 의 정체 아니었을까.


누구나 가난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있다.  청춘의 시간들이 그렇다. 십 몇 해 전, 무작정 해남 땅끝에 갔던 밤이 생각났다.  느지막이 도착한 그곳에서 난 혼자였다.  바람이 거셌고 가을의 끝물이었는지 체온을 빼앗는 공기는 차가웠다.  나를 위무하는 별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지금껏 바라본 별 가운데 가장 크고 선명한 별빛이 그 하늘에 있었다. 아마 난 그 밤, 그 쓸쓸한 땅끝에서, 청춘의 궁핍과 무능을 오래도록 증오했을 것이다.


그 시간 이후로, 내 삶은 결핍에서 멀어지려 발버둥치는 삶이었다.  나는 풍부한 자아의 상상력보다 월급날의 넉넉한 통장잔고에 만족해하는 속물이 되고 말았다.  때묻었지만 때가 묻는지도 모르는 삶이 결핍 건너편에 존재하는 내 미래일 것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  하여, 나는 오랜 시간 시를 읽지 않았다.  시 속에서 나는 스스로의 오염도를 확인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완독해 낸 시집 한 권을 통해 이제 시 읽는 독자로 돌아가고자 한다. 순수하고 욕심없고 가난했지만 비굴하지 않았던 김태정의 시편들은 내 성정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다시 미황사에 가고 싶다.


노동의 정서, 조심스러운 희망
레콘키스타 2008-09-01


서정저수지-리미에게

김태정


그때 우린 저수지 둑 위에 앉아 있었지
어둠이 빚어낸 달빛에
삐비풀은 그림자로만 흔들리고
너무 깊이 물소리를 감춰 차라리
텅, 비어 있는 것만 같던 저수지
너의 노래는 낮게 더 낮게
잔잔한 비늘결에 물수제비를 띄우며
어둠 저편으로 가라앉았지

두륜산 어느 암자에 두고 온
네 첫사랑은 알코올중독이라 했겠다
무심코 바람이 불어
달빛 속을 튕겨오르는 은빛 물비늘떼

열다섯 무렵부터 앓게 된 간질은
스물아홉의 풋사랑마저 허락지 않는다며
너는 또 쓸쓸히 웃었던가

하여 너의 사랑은, 깊이 감춰
텅 빈 것만 같은 너의 사랑은
어둠이 가만가만
달빛을 그늘새김하는 꽃살문 저쪽
몰래 취기 어린 사내의
뒹구는 술병 속 공명으로만 사무칠 뿐
깊이 감춰 텅 빈 것은
너의 사랑만이 아니어서

그때 우리 다만, 저수지 둑 위에 앉아 있었던가
달빛이 너와 나 사이
비밀경전처럼 내밀한 경계를 이루고

어둠을 완성하는 너의 침묵과
달빛을 갈망하는 나의 결핍 사이
깊이 감춰 텅 빈 것은 저수지만이 아니어서


언제부터인가 좋은 시에 나오는 '쓸쓸하다'를 읽을 때마다 자꾸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나의 누선을 자극하는 말이지요...
오랜 만에 그 '쓸쓸하다'는 표현이 제대로 박힌 가슴 먹먹한 시집을 보게됐습니다.
하여,  
추천합니다. 김태정 시인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창비刊>.

오랜 만에 노동의 정서가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의 이웃에게 한없이 따스한 시선을 던지는, 그렇다고 고루한 참여시는 절대 아닌, 참으로 가슴 먹먹하고 잔잔한 서성시인을 만나게 됩니다.

수사만 번득이고 너절한 잠언으로 우리의 국민윤리를 건드리는 부박한 시들의 출몰에 그는 한점 진실하고 절절한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조심스러운 희망을 전합니다.

 
.
김태정 시인의 시집은 엊그제 북한산 비박하는 날 사서,
오늘 익산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다 보아버렸습니다.  
몇 가지 추천작은 제목만 전하렵니다.

 <동백나무 그늘에 숨어>, <낯선 동행>, <세상의 불빛 한점>...

 
세상의 불빛 한점

김태정

 
세상에 보태줄 것 없어
마음만 숨가쁘던 그대 언덕길
기름때 먼지 속에서도
봉숭아는 이쁘게만 피었더랬습니다
우리 너무 젊어 차라리 어리숙하던 시절
괜시레 발그레 귓불 붉히며
돌멩이나 툭툭 차보기도 하고
공장 앞 전봇대 뒤에 숨어서
땀에 전 작업복의 그대를
말없이 바라보기나 할 뿐
긴긴 여름해도 저물어
늦은 땟거리 사들고 허위허위
비탈길 올라가는 아줌마들을 지나
공사장 옆 건널목으로 이어지던 기다림 끝에
언제나 그대가 있었습니다
먼 데 손수레 덜덜 구르는 소리
막 잔업 들어간 길갓집 미싱 소리
한나절 땀으로 얼룩진 소리들과 더불어
숨가쁜 비탈길 올라가던 그대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허방을 짚은 손에
야트막한 지붕들은 덩달아 기우뚱거렸댔습니다
그대 이 언덕길 다할 때까지
넘어지기 말기를
휘청거리지 말기를
마음은 저물도록 발길만 흩뜨리고
그대 사라진 언덕길 꼭대기에는
그제 막 보태진 세상의 불빛 한점이
어둠속에서 참 따뜻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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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정갈한 삶이 녹아든 시
mirunamu2 2006-08-23

김태정 시인의 시는 화려한 레이스 없는 옷같은 소박하고 정갈함이 있다. 난 원래 시를 좋아하지 않았는데(화려한 언어유희, 혹은 삶을 억지로 예쁘게 포장하는 것 같아서..) 이 시집을 읽고 시가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지 알게 되었다. 이 시는 사랑타령이 아니어서 난 좋다. 시인의 평탄치 않았던 삶이, 감성이 그럼에도 담담하고 또 내적인 완숙이 시 안에 그대로 배어 있어 시를 읽는 동안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정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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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나무/ 김태정
appletreeje ㅣ 2013-04-09 ㅣ 공감(22) ㅣ 댓글 (16)


바람이 왱왱 우는 날, 김태정 시인의 시집을 꺼내 읽는다.
바깥의 일이 몇 개 있지만, 바람이 온종일 왱왱 울어 나도
가만히 앉아 詩集을 읽고, 푸른색 형광빛 자판을 심해를 헤엄치듯
또깍또깍 두드리며 일을 한다.
누군가 가져다 준 진달래꽃을 어항 옆에다도 꽂고, 책상위에다도
물을 가득 담아 꽂아두고 틈틈히 들여다 본다.
"어유, 너 참 곱구나! 고와. 참 이쁘게도 피었네."
이 꽃이 어느 山 자락 기슭에 피어 있던 꽃이든, 지금 나의 눈앞에
피어 있든 이미 다 좋기만 하다. 나는 이제 저마다의 꽃빛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윙윙 울어 혼자 있는 날,
김태정 詩人의 마알간 얼굴,같은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물푸레나무 가지가 파르스름 물을 길어올리듯, 그렇게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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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마흔해가 넘도록 깃들여 살아온 서울을 떠나 해남에
내려오기까지 스스로를 내몰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곳
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정 많은 사람들의 푸근한
심성 때문이리라.
뒤늦게 묶어내는 시집이라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눌
즐거움이 있다면 이곳 '정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작고 보잘것없는 시들이나마 부모님 영전에 바쳐지는 술 한잔,
물 한 모금이 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게 없겠다.


2004년 7월

김태정



시인 김태정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펴내
04.07.30 15:01l최종 업데이트 04.07.30 15:36l

이종찬(lsr)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럼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을지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번도 본 적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할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찬찬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28~29쪽, <물푸레나무> 몇 토막


서울에서 탯줄을 끊고 마흔 해가 넘도록 줄곧 서울에서만 살아온 서울 토박이 김태정 시인. 그이가 어느날 갑자기 손때 발때뿐만 아니라 마음때까지 골고루 묻은 그 서울을 버리고 홀연히 전라남도 해남의 땅끝마을로 내려갔다. 한반도를 혁띠처럼 조이고 있는 휴전선을 기준으로 잡는다면 서울과 해남은 한반도의 끝과 끝이 아니겠는가.

해남은 어떤 곳인가. 해남은 우리 문단사에 획을 그은 <오적>의 시인 김지하를 비롯한 <진혼가>의 시인 김남주, <참깨를 털면서>의 시인 김준태, <초혼제>의 시인 고정희 등이 생명의 탯줄을 자른 곳이 아니던가. 그 중에서도 땅끝마을은 말 그대로 한반도의 끝자락이 아니던가.

근데 왜 김태정은 하필이면 땅끝마을로 내려갔을까. 그이는 "어느 표류하는 영혼이/ 내생을 꿈꾸는 자궁을 찾아들 듯/ 떠도는 마음이 찾아든 곳" 그곳이 바로 "해남군 송지하고도 달마산 아래"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장춘이라는 지명이 그닥 낯설지" 않은 것은 그 곳에 "간장 된장이 우리 살아온 내력처럼 익어가는/ 윤씨 할머니댁 푸근한 뒤란"(달마의 뒤란)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마흔해가 넘도록 깃들여 살아온 서울을 떠나 해남에 내려오기까지 스스로를 내몰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곳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정 많은 사람들의 푸근한 심성 때문이리라./ 뒤늦게 묶어내는 시집이라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눌 즐거움이 있다면 이곳 '정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시인의 말' 몇 토막


지난 1991년 <사상문예운동>에 <우수(雨水)> 등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태정(41)이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을 펴냈다.

등단 13년 만에 펴낸 이 시집은 모두 3부에 '호마이카상', '오늘밤 기차는', '겨울산', '혀와 이', '해남시외버스터미널', '멸치', '배추 절이기', '내 손바닥 위의 숲', '세상의 불빛 한점', '물속의 비늘'을 포함 45편의 시가 "이 저녁 허기진 밥상 위에/ 따뜻한 고봉밥으로 숲을 이룬 산"(산)처럼 이 세상을 포근하게 끌어안는다.

이 세상을 포근하게 끌어안는다고? 그렇다. 지금 땅끝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인은 "손바닥의 잔금만큼 사소한 근심들이 거미줄 치던 세월," 그 고된 세월 속에서 "시누대 그 고통의 생장점이 스스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듯 슬픔이 나를 팽창시켰고 나는 어느덧 손금 위에서 서성이지 않아도 좋을 나이"(봄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젠 너를 갈아치울 때가 되었나보다
네가 낡아서가 아니야
싫증 나서는 더더욱 아니야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해온
네가 이젠 무서워졌다
무서워졌다 나의 무표정까지도 거뜬히
읽어낼 줄 아는 네가,
반질반질 닳아버린 귀퉁이만큼 노련해진 네가,
너를 펼쳐놓는 순간부터
시를 쓸지 책을 읽을지
아니면 밥을 차려 먹을지
내 행동을 점칠 줄 아는 네가 무서워졌다
네 앞에서 시를 쓴다는 것이,
네 앞에서 거짓말을 못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이십년 전이나 이십년 후나
변함없이 궁핍한 끼니를 네게 보여야 한다는 것이
불편해졌다

-8쪽, <호마이카상> 몇 토막


어느 날 시인은 "책상도 되고 밥상도 되는" 호마아카상을 펴다가 문득 무서움을 느낀다. 귀퉁이가 닳아 반질반질 빛이 나는 그 호마아카상은 시인과 더불어 거의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그 호마이카상이 시인의 가난한 살림살이와 시인의 속내를 모조리 궤뚫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인은 그 상에 앉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밥을 먹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하는" 그런 시를 써왔다. "시가 밥을 속이는지/ 밥이 시를 속이는지"는 몰라도, 하여튼 이제는 "죽도 밥도 아닌" 그런 세월이 너무도 초라하고 쓸쓸하게만 느껴진다.

이제 시인은 그 호마이카상을 버리려 한다. "네 앞에서 발바닥이 되어버린 자존심/ 아무래도 이 시시한 자존심 때문"에. 여기서 시인이 버리려 하는 것은 비단 호마아카상뿐이 아니다. 이십년 동안 허우적거리며 살아온 세월과 그 세월 속에서 끝없이 자신을 옭죄이고 있었던 그 모든 것을 몽땅 버리려 한다.

그러므로 시인이 말하는 "이 시시한 자존심"은 남에게 나를 내세우고 싶어하는 알량하고 얄팍한 그런 자존심이 아니다. 고된 세상살이에서 끝없이 버림 받고 짓밟히면서도 기어이 살아나는 질갱이처럼, 시인의 초라하고도 가난한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의 샘이다.


부업이나마 한 일년
코일을 감고 나사를 돌려도
시급 2,000원의 밥을 모른다는 말씀

연결대에 나사를 끼우는 것은 아주 단순한 일
엄지와 검지만으로도 나사가 돌듯
세상은 바삐바삐 또 때론 단순하게 돌아가지만
컨베이어를 타고 온 시간은 차곡차곡
박스째 부려지지만

우두커니 완성품이나 세고 있는
철없는 시인
손톱 밑의 쇳가루나 파고 있어라
쇠의 밥을 먹겠다는 엉뚱한 시인
기름때 먼지 한가운데 그저 우두커니 서 있다가
한바탕 싸우고 난 사람들처럼
막 작업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열기나 느껴보아라
손끝에 남아 있는 쇠의 온기나 힘껏 쥐어보아라

-43~44쪽, <부업> 몇 토막


시인은 그동안 서울에서 너무도 힘겹고 배고픈 삶을 살아왔다. 어렵사리 시인이 되었지만 시가 밥을 먹여 주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코앞에 닥친 식의주를 해결하기 위해 "가윗밥을 넣고 아이롱을 달구어도/ 밥의 내력"을 잘 몰랐다. 언젠가는 시가 밥이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다시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기계가 멈추고 기계가 돌아도/ 끝내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는 결국 "엄지와 검지의 굳은살로 밥이 된다"(부업)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시인은 마침내 "손가락 하나 까딱 안하면서 쉽게/ 시를 쓰듯이 정말 쉽게 밥을 먹는 것"이란 "눈물 나는 이 시대의 코미디"(거식증)라고 결론 짓는다.


그렇다. 이 땅에서 시만 쓰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설령 각종 잡지와 언론사에서 시 청탁이 줄을 잇는다 하더라도 시가 어디 국화빵 찍어 내듯이 그렇게 쓰여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시인은 "요 시인, 철없는 시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만/ 생업과 부업의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에게도 집이란 것이 있다면
미황사 감로다실 옆의 단풍나무를 지나
그 아래 감나무를 지나
김장독 묻어둔 텃밭가를 돌아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두 칸짜리 해우소
꼭 고만한 집이었으면 좋겠다

-60쪽, <동백꽃 피는 해우소> 몇 토막


시인의 꿈은 소박하다. 아니, 어쩌면 가난한 시인에게 있어서 "무명저고리에 행주치마 같은/ 두 칸짜리 해우소/ 꼭 고만한 집"도 엄청난 사치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해우소에 앉아 "세상을 두 발로 버티듯 버티고 앉아/ 그리울 것도 슬플 것도 없는 얼굴로/ 버티고 앉아/ 저 알 수 없는 바닥의 깊이"를 헤아려 본다.

그 바닥에는 "똥 누는 일, 그 삶의 즐거운 안간힘 다음에/ 바라보는 해우소 나무쪽창"도 보이고, "슬픔도 기쁨도 다만 / 두 발로 지그시 누르고 버티고 앉아 / 똥 누는 일 그 안간힘 뒤에 바라보는 쪽창 너머 / 환하게 안겨오는 애기동백꽃"도 보인다.


"삶의 안간힘 끝에 문득 찾아오는 / 환하고 쓸쓸한 꽃바구니"처럼.


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소금을 뿌려놓은 배추가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

-78쪽, <배추 절이기> 몇 토막


김치를 담그기 위해 소금을 뿌려 배추를 절이던 시인은 배추가 쉬이 절여지지 않는 것을 보고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퍼런 상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시인의 얼굴 반쪽에 마치 천형(天刑)처럼 시퍼렇게 배인 그 쓰라린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시인이 배추에 뿌려지는 왕소금 같은 세파에도 불구하고 끝내 절여지지 않았던 자존심, "씹새끼!/ 설사가 나온다/ 후련하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래서 좋다"(시의 힘 욕의 힘)처럼 끝내 시를 버릴 수 없는, 그래서 시의 예리한 칼날에 이리저리 베인 그 상처를 말하는 것일까.

그 때문에 시인은 "점심 먹고 한번/ 빨래하며 한번/ 화장실 가며오며 또 한번/ 골고루 뒤집어도 주고/ 소금도 가득" 뿌려 주었지만 결코 절여지지 않는 배추를 보며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제 스스로 제 성깔 잠 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배추 절이기) 기다리기로 한 것일까.

시인 김태정의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은 마흔이 넘도록 가난하고 고되게 살아온 서울에서의 삶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그리고 서울을 버리고 해남 땅끝마을에 정착한 사십대 여성시인의 물결처럼 자잘한 삶의 결이 마음 쓰리게 일렁거리고 있다.

그래. "궁핍이 나로 하여 글을 쓰게 하니/ 궁핍이 글로 하여 나를 살게 하니/ 가난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조력자"(궁핍이 나로 하여)가 아니겠는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박스]
시인 김태정은 누구인가
서울 토박이, 지금은 해남 땅끝마을로 내려가

"그가 사물과 만나는 방식은 사뭇 다정하고 나긋나긋하다. 잔잔하고 찬찬하게 다독거린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물들듯이 그렇게. 그는 세상과 대결한다기보다는 감싸안으려 애쓴다. 그의 이 같은 순정은 참으로 맑아서 익숙지 않은 사람은 일순 당황하기도 한다." -정우영(시인) '해설' 몇 토막

 지금 서울을 떠나 해남 땅끝마을에서 살고 있는 시인 김태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사상문예운동>에 '雨水'(우수)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13년 만에 첫 시집을 펴낸 시인 김태정은 '시인의 말'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시들이나마 부모님 영전에 바쳐지는 술 한 잔, 물 한 모금이 될 수 있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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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弔詞] 시인, 땅끝에 잠들다

민중서정시인 故 김태정을 추모하며


시인 김태정(1963~2011)의 부고를 들은 건 문자메시지를 통해서였다. 내가 속해 있는 한국작가회의에서 보낸 단체 발송용 문자였다. 시인 김태정 회원 별세, 해남 제일 장례식장, 발인 9월 8일.

처음에 문자를 받았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껏 김태정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시집 한 권을 수년전에 내었다는 사실밖엔 없었으니까. 시들이 참 단단하고 단아하여서 마음이 땡볕 같은 날에 꺼내보는 시집이었다.

그녀의 살아생전 유일한 한 권의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창비, 2004)에 소개되어 있는 그녀의 약력은 이렇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1991년 『사상문예운동』에 「雨水」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태정의 시들은 어느 하나의 경향에 가둬놓는 일이 어리석을 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동시대 여느 시인들과는 다른 어떤 지점을 그녀가 선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시인 정우영은 그녀의 시집 해설에서 그녀의 시를 '민중서정시'라 명명하고 있다.


개천 건너엔 여직 환한 공장의 불빛/점심 먹고 저녁 먹고/실밥을 따고 아이롱을 달구는 당신/늦게 나온 별처럼 깜빡깜빡/고단한 두 눈이 졸음으로 이울고/숨차게 돌아가는 미싱 소리에 이 밤은/끝도 없을 것 같아도/오늘밤 무슨 불꽃놀이라도 있는지/잔치라도 한판 걸게 벌이려는지/물 위에 드리워진 불빛을 밟고/가만 가만히 다가가서는/당신의 창가에서 펑펑 터지는 별들/그러나 당신은 아랑곳없고/미싱은 숨차게 돌아가고/실밥은 하나 둘 쌓여가고//보세요 당신/그 거친 손에서 달구어진 아이롱처럼/이밤사 순결하게 달아오른 별들을/따버린 실밥들이 하나 둘 쌓여갈 때마다/활발해지는 이 어둠의 풍화작용을/보세요, 땀방울 하나 헛되이 쓰지 않는 당신/누구의 땀과 폐활량으로 오늘밤/하늘의 사막에 별이 뜨는 지

- 「해창물산 경자언니에게」중에서


절창이다. 시인 정우영의 해설처럼 "노동의 가치가 이처럼 다사롭게 울리는 시도 달리 찾기 어렵"겠다. 80년대 노동시의 생경함과 90년대 서정시의 공허함과 2000년대 환상시들의 난해함에서 그녀의 시들은 멀찌감치 비켜서 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경자언니'들이 "땀방울 하나 헛되이 쓰지 않"고 노동을 하고 있질 않은가. 그녀의 다른 시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김태정의 시에는 저 박노해의 절절함과 허수경의 관능미가 편편에 녹아 있다.


▲故 김태정 시인


그런 김태정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건 올 봄의 일이다. 63년생이라면 올해로 마흔 아홉인데 참으로 단출한 약력이다 싶어 나는 그녀의 시를 읽다 문득문득 검색 창에 <시인 김태정>을 쳐보곤 하였다. 첫 시집 출간에 관한 기사 외엔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김태정 시인의 근황을 알 게 된 건 이원규 시인이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에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아프다. 많이 아프다. 지난 연말 암 판정을 받았지만 이미 늦었다. 얼마나 홀로 고통을 견뎌왔으면 이미 골수 깊숙이 암세포가 다 번지고 말았을까. 대학병원에서는 3개월 못 넘길 것이라고 선고했지만 김태정 시인은 지금 외딴 농가에서 홀로 견디고 있다. "뭐 하러와. 그냥 조금 아프네. 난 괜찮아. 너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하며 힘없이 웃는 그녀의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차마 아무 말도 못했다. 그저 보일러기름이나 떨어지지 않았는지 둘러볼 뿐이었다. 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에겐 죽음이 이토록 가까운 것일까."

-이원규, <땅끝 해남의 시인들……김남주 고정희 그리고 김태정>, 경향신문 2011년 4월 13일, 중에서

 
서울 토박이인 그녀가 훌쩍 땅끝마을 해남으로 떠난 것은 2004년의 일이라 한다. 그녀의 시들에선 해남에서의 생활이 간단치 않은 언어로 녹아 있다. 시인 정우영이 명명한 '민중서정시'의 많은 시들이 그곳에서 씌여진 듯하다. 아쉽게도 나는 그녀와 이승에서의 인연이 없다. 미안하게도 나는 그녀의 빈소에 찾아가질 못했다.

이상한 가을이다. 분명히 9월은 가을이라 배웠는데 연일 폭염주의보다. 이 가을에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셋이나 잃었다. 타격의 달인 장효조, 무쇠팔 투수 최동원, 그리고 '민중서정시인' 김태정. 연일 매스컴에서는 장효조의 기록적인 통산타율과 최동원의 전대미문 한국시리즈 4승을 보도하기에 바쁘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단 한 줄, 내 사랑하는 시인이 이 세상을 등졌다는 기사 하나가 없다. 너무나 유치한 고민이라고 해도, 시샘이라고 해도, 이 땅의 시인들 설 자리가 땅끝마을 저 바깥으로 자꾸만 내몰리는 것 같아 나는 자꾸만 서러워진다. 시인이 내려놓고 간 계절의 모퉁이에 나는 내 방식대로 조사(弔詞)를 쓴다. 시인이여, 부디 저 세상에서는 편히 쉬기를.


이상한 가을

타격의 달인 장효조가 죽었다
무쇠팔 최동원도 죽었다
그리고 생전에 단 한 권의
시집을 낸 김태정도 죽었다
9월이었다

김태정의 시를 읽다가
마음이 먹먹해져
느리게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한 저녁이었다
티브이를 켰는데
오래된 화면에서
마운드엔 최동원이
홈플레이트엔 장효조가
서 있었다
1984년의 가을이었다
이상한 저녁이라고 생각했다


글_시인 박진성_2001년 『현대시』등단. 시집 『목숨』, 『아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