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봄 눈이 다녀갔다
간밤 눈이 내렸나보다
삼월 봄눈이 눈을 감은 사이 다녀가다니
고수밭에도
홍매화 꽃에도
고깔같은
봄 눈 흔 적
악양편지 식구들과
매화향기 킁킁거리며 강을 따라 걷다가
문득 그 녀석 생각
"어머 시인님 저 반짝이는 강물 좀 봐요
저기 저 모래톱 좀 봐요
낙동강에는 이제 저런 모래톱을 볼 수가 없어요"
작고 귀여운 호들갑을 떨며 동영상을 찍고 있었을
그 녀석 생각났다
좀 귀찮게 여기기도 했고 큰소리도 쳤으며
측은해 지기도 했다
고맙다는 말 한번은 해야할텐데...
그러다가 그 녀석은 떠났다
환경문제와 위안부할머니들을 위한 수요집회와
크고작은 운동적 모임과 집회에
젓가락처럼 마르고 가냘픈 몸으로 숨차게 뛰어다녔을
발자욱 소리가 강물에 실려 오는 듯해서
숨소리가 매화향기에 묻어나는 듯 해서
작년 1월29일 겨울비가 왔었는가보네
그 녀석이 죽은 후 문득 그날 음악을 듣다가 생각이 나서
악양편지에 젖은 시간이 ..... 를 올렸다
그리고 시청탁이 와서 그 단상들을 다듬어 시로 썼고
그 시가 여기저기 괜찮은 시라고 뽑혀 실렸다
마당에 나가 봄눈을 보고 들어와
차를 마시다가
어느 별나라일까
그녀에게 매화탕이나 한그릇 띄워야지
영혼의 우체국은 찰나간의 우주를 건너 배달될 것이므로
꽃의 영혼으로...
젖은 나무가 마를 때까지
옛날을 젖게하네 양철지붕 저 겨울비
방울방울 바다로 가듯이
그렇게 흐르는 것들 흘러간다 여겼는데
풍경은 꺼내고 들춰지는 것인가
돌이킬 수 없는 사람이 보내온
돌이킬 수 있는 흔적들이 비처럼 젖게하네
젖는다는 것, 내겐 일찍이 비애의 영역이었는데
비에 젖었던 나무들은 몸의 어디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장작을 팰 나무들 앞마당에 비를 맞는다
젖은 나무가 마를 동안
나는 이미 젖었으므로
햇살이 오는 길목을 마중해야겠지
언젠가 이 길을 달려오며 들뜨게 했던 기다림들
봄날은 쨍쨍 거릴 것이며 장작은 말라갈 것이다
젖은 시간이 말라간다
퍽~
오래 흘러왔으므로
나무의 젖은 탄식도 몸을 건너갔다는 것을 안다
천천히 도끼질을 다시 시작한다
몸이 가벼워지는 동안 나뭇간에 발자국 쌓여갈 것이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