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스크랩] 김석교 시집 `봄날 아침부터 가을 오후까지`

하동댁 2017. 2. 10. 14:01


모처럼 책을 정리하다,

김석교 제2시집 봄날 아침부터 가을 오후까지를 다시 펴본다.

1부 반가운 독감, 2부 한 삽, 3부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

4부 가을 편지, 5부 북촌리여 북촌리여로 나누어 65편을 실고 있다.

 

해설 분출을 꿈꾸는 마그마에서 김동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방황하고 배회하는 길에 펼쳐지는 무대는 그의 우주다.

별이 하늘에서, 배가 바다에서 자유롭듯이,

그는 우주에서 유영을 꿈꾼다. 그것이 곧 그의 우주다.”라고.

 

처녀시집 넋 달래려다 넋 놓고이후 10년 만에 나온 시집의

시인의 말’은


  ‘--방목했던 짐승들을 불러 모으는 테우리처럼, 흩어진 글들을 다울려 겨울채비를 한다. 오랜만에 시집을 엮기로 맘먹자 좀 잘 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덧없다. 이제 다른 시간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무엇을 만날 것인가.’라 썼다.

 

시집에서 가을 향기 나는 시편을 옮겨

제주 가을바다 풍경과 같이 싣는다.

 

 

마음의 소리를 듣는 법

 

그토록 내 마음이 알고 싶다면

동녘을 향해 눈 감고

내 마음을 열어봐

그럼 가벼운 서슬에도 놀라

새소리로 반짝거리는

내 모습 알게 될 거야

뼈에 사무치는 그리움

애간장 끊기는 슬픔도

모두 나의 자취였음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영영

눈 감고 싶은 아침이 있지

그 때 청명히 귀 열고 들으면

저 잎새의 흔들림도

새털구름 하얀 하늘도

네 마음에 내 마음을

가만히 포개었던 흔적임을

이내 알게 될 거야

     

 

구엄리 바다

    - 유전은 우리의 선조가 전부 타고 있는 역마차이다. 이따금 그 중의 한 사람이 목을 내밀어 우리를 당혹케 한다 - O. W. 홈즈


내 두근거림의 유효기간은 아마

중생대 이후 켜켜이 쌓인 지층만큼일 거야

언제든 불러내 주기만 하면

일만 년쯤 타오를 준비가 된 것 마냥

내 심장의 붉은 쇳물

달궈진 채 손끝까지 흘러내리면

수평선의 사랑, 저녁놀의 별리도

순식간 불꽃 일어 사그리 태우고 말 거야

내 심장은 나의 손에게 지시한다

구엄리 바다 시퍼런 정맥으로

그대를 친친 휘감아

한 오억 년 동안 사랑만 하라고

 

핏줄 속에서 누군가 날 부른다

나도 핏줄로 그대를 부른다

     

 

달빛 바다

 

달과 지구의

애틋한 그리움으로

파도는 인다

잠들지 못하고

이 밤 누군가

잠든 나를 깨운다

 

피 토하는 인광燐光으로

너의 그리움을 살해하며

온 대양이

일렁이는 것도

한 사내가 밤새

바닷가의 달빛에 젖는 것도

 

닿을 곳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는

그리움 때문이리

     

 

홀로 세상에서

 

해거름 그대의

마지막 편지 같은 햇살 속에

파죽지세로 밀려가는 억새꽃, 말갈기들

 

들쑥부쟁이 꽃망울 터뜨린 산길에

그대 아직도 잠들지 못하고 서성일 텐데

 

붉은 목장길

장끼 한 마리 날아가면

숲은 다시 적막하다

 

몸속에 여름을 담았던 나무들

스산한 바람에 소스라쳐 뚝,

, 가을물 드는 오후

멀리 수평선 위엔 섬 하나

 

들판 가득 휘날리는 흰 빨래들처럼

나도 사정없이 나부끼며 그대 부를까

 

홀로 세상에 빛나는 이여

나도 모르게 와서

내 마음길 거닐다 가는 이여

     

 

가을 편지

 

오늘 나무들은 그림자를 지구 위에 내려놓고

초원의 코뿔소처럼 말없이 서 있습니다

나무 주위를 바람이 한 바퀴 돌다 갑니다

한 쌍의 연인도 나무 밑에 말없이 서 있습니다

사랑은 말이 없어도 너무나 할 말이 많은 것이라고

낙엽 하나가 떨어지며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손톱자국처럼 깊숙이 하늘을 자국 냈던 비행운이

바다물결에 그림자를 버렸습니다

강 연변을 흐르는 기차를 타고 싶었습니다

자꾸만 긴 산맥을 넘고 싶었습니다

나무들은 내일도 그림자를 제 몸 속에 내려놓고

찬비 맞으며 코뿔소처럼 서 있을 겁니다

     

 

가을 시화전

 

밤이 이울자 회담벽의 붉은 담쟁이가 달을 쳐다본다

오늘은 푸른 치아를 드러내며 바람이 내게 말을 건다

 

대답 대신 풀벌레가 신발을 벗고

잔디밭에 엎드려 속삭이듯 흐느낀다

 

아직도 철들지 않은 여치 한 마리

연초록 속날개가 한복처럼 달빛에 눈부시다

 

아스팔트는 체온이 식어 은빛으로 빛나고

한낮의 정구공 소리가 들리는 듯한 교정

 

까르륵 웃음 짓는 여학생들의 살굿빛 잇몸

옥수수 같은 치열 끝에 젖은 바다가 걸린다

 

그 사람은 어디 있을까

철로도 없는데

불을 끈 기차가 시간 속을 달리고 있다


   *김석교 시집 '봄날 아침부터 가을 오후까지'(심지시선 008, 2009.)에서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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