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바래봉 눈꽃산행
바래봉 바람
이 경 희
오래전 부터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적 추적 비가 내리던 봄날의 바래봉 철쭉을
보겠다고 동료들과 산행을 시작하던 그날부터
그는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더이상은 올라갈수가 없다고
팔랑치의 장관인 철쭉도 더이상은 걸을수가
없다고 발이 아프고 신발이 안맞아서
올라갈수가 없다는 동료들의 성화에
반절도 못올라가서 나는 그와의 만남을 포기해야 했었다.
그뒤 또한번 바래봉의 바람이 그리웠다.
아니 그때까지도 그가 나를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다.
또한번 바래봉을 찾았을때에는
이글거리는 불판위에 삼겹살만 맛보고 돌아섰다.
바래봉 철쭉 탑아래 정자에서 우리는
걸걸한 막걸리 한사발에 취하여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바래봉 바람을 또 잊어버렸다.
그가 나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사실을 머리속에서 잊고 있었다.
물론 약속을 한것이 아니기에
내게 기다리겠노라고 말을 한것도 아니기에
난 그가 바람결 타고 속삭이는 말들을 그저 흘러버린것이다.
세번째 바래봉을 찾았던 날은
눈꽃이 환상인 날이였다.
바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 왜 이제 온거야 얼마나 기다렸다고 ... "
" 그런데 와줘서 고마워 "
산위의 나무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하고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고
소나무 위의 눈송이는 사정없이 흔들고 지나간다.
가끔은 심통을 부리고
가끔은 내볼에 살짝 애무도 하고
정상에서 그를 만났다.
격하게 나를 반긴다.
너무 세게 안아서 몸을 주체 할수가 없다.
" 알았어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나도 먹기 살기 힘들었다고
힘든 세상살이에 간신히 버티었다고 "
그러니 이제 그만 화를 푸세요 바람님 "
바래봉의 세찬 바람이 나를 격하게 반긴다.
세상사에 묻은 먼지와 삶의 찌꺼기를 모두 그가 털어준다.
난 이제야 비로소 그를 맞는다.
그와 내가 한몸이 된다.
바래봉 정상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