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충만 시

[스크랩] 창호지문에 핀 동백

하동댁 2016. 3. 14. 08:51

 

 

 

첨부파일 11. 박남준 - 동백.mp3

 

 

    동백

 

   동백의 숲까지 나는 간다

   저 붉은 것,

   피를 토하며 매달리는 간절한 고통 같은 것

   어떤 격렬한 열망이 이 겨울 꽃을 피우게 하는지

   내 욕망의 그늘에도 동백이 숨어 피고 지고 있겠지

 

   지는 것들이 길 위에 누워 꽃길을 만드는구나

   동백의 숲에서는 꽃의 무상함도 다만 일별해야 했으나

   견딜 수 없는 몸의 무게로 무너져내린 동백을 보는 일

이란

   곤두박질한 주검의 속살을 기웃거리는 일 같아서

   두 눈은 동백 너머 푸른 바다 더듬이를 곤두세운다

   옛날은 이렇게도 끈질기구나

   동백을 보러 갔던 건

   거기 내 안의 동백을 부리고자 했던 것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떨어지네

   무수한 칼날을 들어 동백의 가지를 치고 또 친들

   나를 아예 죽고 죽이지 않은들

   저 동백 다시 피어나지 않겠는가

   동백의 숲을 되짚어 나오네

   부리지 못한 동백꽃송이 내 진창의 바닥에 피어나네

 

 

박남준 시집 <적막> 중에서...

출처 : 박남준 詩人의 악양편지
글쓴이 : 이현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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