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7월의 시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 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레 일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 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청포도
이육사
내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계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 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7월
<이외수>
그대는
오늘도 부재중인가
정오의 햇빛 속에서
공허한 전화벨 소리처럼
매미들이 울고 있다
나는
세상을 등지고
원고지 속으로
망명한다
텅 빈 백색의 거리
모든 문들이
닫혀 있다
인생이 깊어지면
어쩔 수 없이
그리움도 깊어진다
나는
인간이라는 단어를
방마다 입주시키고
빈혈을 앓으며 쓰러진다
끊임없이 목이 마르다
7월
<목필균>
한 해의 허리가 접힌 채
돌아 선 반환점에
무리지어 핀 개망초
한 해의 궤도를 순환하는
레일에 깔린 절반의 날들
시간의 음소까지 조각난 눈물
장대비로 내린다
계절의 반도 접힌다
폭염 속으로 무성하게
피어난 잎새도 기울면
중년의 머리카락처럼
단풍 들겠지
무성한 잎새로도
견딜 수 없는 햇살
굵게 접힌 마음 한 자락
폭우 속으로 쓸려간다
7월
<오세영>
바다는 무녀
휘말리는 치마폭
바다는 광녀
산발한 머리칼
바다는 처녀
푸르른 이마
바다는 희녀
꿈꾸는 눈
7월이 오면 바다로 가고 싶어라
바다에 가서
미친 여인의 설레는 가슴에
안기고 싶어라
바다는 짐승
눈에 비친 푸른 그림자
7월
<홍윤숙>
보리 이삭 누렇게 탄 밭둑을
콩밭에 김매고 돌아오는 저녁
청포묵 쑤는 함실 아궁이에선
청솔가지 튀는 소리 청청했다
후득후득 수수알 흩뿌리듯
지나가는 저녁비, 서둘러
호박잎 따서 머리에 쓰고
뜀박질로 달려가던 텃밭의 빗방울은
베적삼 등골까지 서늘했다
뒷산 마가목나무숲은 제철 만나
푸르게 무성한데
울타리 상사초 지친 잎들은
누렇게 병들어 시들었고
상추밭은 하마 쇠어서 장다리가 섰다
아래 윗방 낮은 보꾹에
파아란 모기장이
고깃배 그물처럼 내걸릴 무렵
여름은 성큼 등성을 넘었다
7월의 바다
<황금찬 >
아침 바다엔
밤새 물새가 그려 놓고 간
발자국이 바다 이슬에 젖어 있다.
나는 그 발자국 소리를 밟으며
싸늘한 소라껍질을 주워
손바닥 위에 놓아 본다.
소라의 천 년
바다의 꿈이
호수처럼 고독하다.
돛을 달고, 두세 척
만선의 꿈이 떠 있을 바다는
뱃머리를 열고 있다.
물을 떠난 배는
문득 나비가 되어
바다 위를 날고 있다.
푸른 잔디밭을 마구 달려
나비를 쫓아간다.
어느새 나는 물새가 되어 있었다.
7월의 바다
<박우복>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밀려드는 너와
흔적 없는 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너의 외침이 가슴을 때릴 때
나를 묶고 있던 온갖 기억들은
하얀 포말이 되어 흩어져 버렸다
슬퍼하지 말자
기뻐하지 말자
밀려드는 파도도 거부하지 말자
7월의 바다는
나의 마음을 먼저 알고
아픈 추억을 만들지 않는다
단 둘이만 있을지라도 !
7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김종해>
흙은 원고지가 아니다.
한자 한자 촘촘히 심은 내 텃밭의 열무씨와 알타무씨들
원고지의 언어들은 자라지 않지만
내 텃밭의 열무와 알타리무는 이레 만에 싹을 낸다
간밤의 원고지 위에 쌓인 건방진 고뇌가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가를
텃밭에서 호미를 쥐어보면 안다
땀을 흘려보면 안다 물기 있는 흙은 정직하다
그 얼굴 하나 하나마다 햇살을 담고 사랑을 튀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내 텃밭에 와서 일일이 이름을 불러낸다
칠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텃밭에서 내가 가꾼 나의 언어들
하늘이여, 땅이여, 정말 고맙다